[인터뷰] 정란아 전 서울시NPO지원센터장
2월, 센터 위탁 운영 종료...“큰 프로젝트 하나 마무리한 느낌”
활동가 30년, 비영리 생태계의 변화와 성장 확인
“공공의 압박 거세지만 그래도 비영리 생태계가 사회혁신 이끌어 갈 것”

“(위탁 종료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자괴감이 들지는 않아요. 뭐랄까...큰 프로젝트 하나 마무리한 기분이에요” - 정란아 전 서울시NPO지원센터장

올해 2월, ‘서울시NPO지원센터’가 간판을 내렸다. 동시에 센터를 맡아서 운영하던 수탁기관도 바뀌었다. 하지만 센터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라는 이름으로 센터가 다시 운영될 거라고 밝혔다.

‘서울시NPO지원센터’ 이름으로 센터 운영을 책임졌던 정란아 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은 “아쉽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우리가 이룩해 온 성과가 시민사회로 이어지지 못할까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위탁운영 종료 이후 그동안 센터를 거쳐 간 수많은 활동가들 그리고 관계를 맺어온 단체들이 같이 아쉬워해주고 그동안의 성과를 따뜻하게 격려해 준 덕분에 “과분한 찬사를 받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란아 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제공=서울시NPO지원센터
정란아 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제공=서울시NPO지원센터

지난 6일, <소셜임팩트뉴스>가 위치한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서 정 전 센터장을 만났다. “사람들이 자꾸 뭐 할 거냐고 묻는데 정말 아무런 계획 없다. 근데 여행은 갈거다(웃음)”이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에 나선 그에게 서울시NPO지원센터와 활동가, 그리고 비영리와 시민사회 등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어봤다.  

시민을 직접 만나기보다 활동가를 지원·육성하는 것이 공익활동 증진에 효율적

정 전 센터장은 센터 설립 당시 기획실장으로 참여한 초기멤버다. 서울시NPO지원센터는 서울시의 시민사회 활성화 및 공익활동 증진을 목표로 2013년 11월에 설립됐다. 서울시NPO지원센터는 활동가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방향에 무게중심을 두고 센터를 운영해왔다.

“시민들을 직접 만나서 할 수 있는 (센터) 사업이라는 게 결국 일회성 교육 같은 것일 텐데, 우리는 이게 (공익활동 활성화 측면에서) 그다지 효과적이라고 보지 않았어요. 대신 활동가들이 시민들을 직접 대면했을 때 활동가들이 시민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도구나 지식을 제공하고 그 역량을 지원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NPO 박람회라고 불리는 ‘NPO 파트너 페어’ 같은 자원연계 사업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NPO 박람회’라고 표현하면 비영리단체들이 전시장에서 부스를 차리는 걸 연상하지만, 센터는 정반대로 뒤집었다. NPO들에게 유용한 도구와 정보를 제공해 줄 기관(단체)들을 모아 NPO가 이들을 찾아가 적극적로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많은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정 전 센터장은 “오프라인 때는 4000명이 참석했고 온라인으로 6000명이 참여했다”며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2018 NPO 파트너 페어, NPO X 임팩트투자 브릿지콘서트'에 참여한 연사들. 왼쪽부터 박정호 MYSC 이사, 곽제훈 팬임팩트코리아 대표, 김재현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 고대권 코스리 대표/출처=서울시NPO지원센터
'2018 NPO 파트너 페어, NPO X 임팩트투자 브릿지콘서트'에 참여한 연사들. 왼쪽부터 박정호 MYSC 이사, 곽제훈 팬임팩트코리아 대표, 김재현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 고대권 코스리 대표/출처=서울시NPO지원센터

실험적인 시도로 비영리 생태계에 다양성과 유연성을 불어넣기도 했다. 이른바 ‘비영리 스타트업’이다. 센터가 제안한 비영리 스타트업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이 비영리 생태계에 합류하며 다양한 문제와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다. ▲열린옷장(면접을 앞둔 청년들에게 정장을 대여) ▲니트생활자(무업 청년들의 연결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호모인테르(이주난민들의 통역 지원)가 대표적인 사례다. 비영리 스타트업은 사회문제 해결이 조직적이고 엄숙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점과 달리 유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였다고 평가받는다.

적성과 관심사에 따라 문제의식 뚜렷한 MZ 활동가...구성원들의 역량과 강점을 활용해야 성장

정 전 센터장은 활동가 출신이다. 대학졸업 후 경제정의실천연대(이하 경실련)에 합류하면서 활동가 생활을 시작했다. 경실련 합류가 1995년이니 대략 30년 동안 비영리 영역에서 활동한 셈. 활동가로 시작해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조직의 장까지 맡은 만큼 정 전 센터장은 비영리 생태계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체감하고 있다.

“확실히 다르죠. 일단 용어가 달라요. 우리 때는 시민운동가였는데 요즘에는 활동가라고 표현하죠. 그리고 우리 때는 사회적 사명 같은 게 있었어요. 물론 요즘 활동가들에게도 사회적 사명이 있지만, 그보다는 활동가 개인의 관심사나 적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활동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집중하는 문제가 뚜렷하고 다양하죠”

변화된 양태에 따라 조직의 성공 요건도 달라진다. 정 전 센터장은 성장하는 조직은 구성원들의 역량과 장점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사람이 어떤 업무에 배치됐을 때 그 사람의 (잠재적인) 역량이 극대화 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조직들이 성장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직 전체적으로는 이들 구성원들의 역량과 강점이 위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할은 분명하게 짚어주고 권한과 역할도 명확히 해야죠. 의사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은 리더가 지는 게 맞아요. 그런데 그 전 단계까지는 위계 없이 상호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구성원들의 역량을 조직 전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 역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합니다.”

공공은 정권에 따라 부침 겪지만...민간 생태계는 확실히 성장했음을 느껴

정 전 센터장은 정부에서 진행되는 시민사회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에 대해 “암울하다”는 말로 불쾌감을 표현했다.

“최근에 한 지자체가 비영리민간단체를 전수조사하면서 행정관청에 보고된 주소지에 그 단체가 없으면 바로 등록을 말소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굉장히 폭력적인 방식이에요. 이제까지 관리 안하다가 한번 조사 했는데 그게 등록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로 말소하는 게 첫 번째 문제, 그리고 절차적으로 비영리단체에게 주소지 변경 등록과 관련해 충분한 고지가 됐는지도 따져봐야 해요”

정란아 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사진=정재훈기자
정란아 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사진=정재훈기자

하지만 정권에 따라 공공 분야가 부침을 겪는 것과 반대로 민간의 생태계는 성장해왔다고 평가했다.

“서울 같이 더 이상 굴뚝형 산업을 유치하거나 유지할 수 없는 곳은 결국 서비스 산업 육성이 강조돼죠. 비영리 단체들을 타겟으로 하는 서비스도 일종의 새로운 시장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루트임팩트 같은 조직들처럼 비영리 영역을 시장으로 하는 민간 지원조직들이 생기며 새로운 산업군이 형성됐다고 봅니다”

시민사회가 비전을 제시하고 개별 비영리단체가 동참해 사회혁신 생태계 만들어야

이런 이유로 정 전 센터장은 여전히 한국의 비영리가 사회혁신의 주체로 활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단체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의 고비를 넘기기 쉽지 않겠지만, 여전히 우리 비영리 생태계에는 사회변화를 이끄는 힘이 내재돼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가 비전을 제시하고 개별 (전문 영역/지역) 단체들이 함께 라인을 타주면 대전환의 시대에 한국의 비영리가 사회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어요. 가령 환경운동연합에서 전국에 몇월 며칠 몇시에 (전기)소등 운동을 제안하면 지역에 있는 마을공동체가 같이 합류하는 방식이죠”

거시적인 변화를 제안하는 역할은 시민사회가 맡고 전문영역이나 지역으로 그 힘이 전달시키는 역할을 개별 단체들이 분담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의 강점은 결국 조직력이죠. 사회문제를 오랫동안 들여다본 전문가들이 시민들과 함께 조직을 이루며 움직이니까요. 그래서 한번 움직이는 게 쉽지 않지만 하지만 한번 움직이면 파급력있죠. 그게 조직된 시민들의 힘이구요. 하지만 그 변화의 동력을 우리 사회 곳곳에 전달하는 건 시민사회 힘만으로는 또 안돼요. 그건 전문영역이나 지역과 밀착한 개별 단체들의 영역이에요. 저는 이 둘이 힘을 합치면 시너지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단체별로 또는 영역별로 분절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실에서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이 명령을 하고 지령을 받는 등 아주 긴밀한 관계'라고 했다던데, 아주 착각하고 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웃음). 서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서 모든 사안을 다 협력하고 그랬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서로가 너무 분절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로 간 연결 지점을 잘 찾지 못하고 있거니와 서로에 대한 필요성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 전 센터장은 생태계 전체의 관점에서 성장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숲이라고 부르는 곳에 소나무만 있거나 전나무만 있으면 되겠어요? 여러 나무가 다 숲을 채우고 서로 어우러져야지. 그래야 우리가 생태계라고 부를 수 있듯이 비영리 단체 간에도 연대와 협력이 필요해요. 가령 그저께 3.8여성대회를 열었는데 보통 여성단체만 주로 참여하잖아요. 근데 만약에 이 행사에 인권단체나 환경단체 등 다양한 단체들이 들어오면 훨씬 더 파급력이 있지 않을까요?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보완하면서 성장하는 게 생태계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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