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열린 지역혁신 공동행동 제주간담회, 설문대사협 사례 소개
이주민 많아진 제주, 자조모임이 친정 엄마 역할하며 지역사회에 기여
로컬푸드·클래식 연주·환경예술놀이터 등 다양한 혁신 사례도 소개
“제주의 많은 어려움들이 일과 사람의 연결로 풀릴 수 있다고 믿어”

“친정 엄마가 계신다고 하더라도 제주 사람이 아니니까 여기 와서 돌봐줄 수가 없잖아요. 그 때 친정 엄마에 대한 결핍이 생기죠. 그러다보니 자조모임에 대한 욕구가 되게 많아요. 그렇게 하나둘씩 만들다보니까 그 모임이 10개를 넘었고 어느덧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이어지게 됐네요” 

진윤혜 설문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사진=정재훈 기자
진윤혜 설문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사진=정재훈 기자

지난 23일, 제주시 관덕로 소재 코삿에서 열린 지역혁신 공동행동 제주간담회 자리. 진윤혜 설문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설문대사협) 이사장은 엄마들의 자조모임인 ‘토닥이 선배맘’을 제주지역의 혁신 사례로 소개했다. 진윤혜 이사장은 개인의 결핍이 우리 모두의 문제로 확인되는 순간, 지역혁신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주민이 늘어난 제주. 그 낯선 땅 제주에서 선 엄마들은 자조모임을 만들어 공통의 문제 앞에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신화 속 여신 '설문대할망'에서 이름을 따왔다.

진윤혜 이사장은 결혼과 함께 제주도에 정착한 제주 이주민이다. 아이는 셋. 친정 엄마의 도움이 많이 생각났지만 안타깝게도 진 이사장의 친정 엄마는 아이를 낳기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 그는 “엄마들은 다 아실 것”이라며 “(친정 엄마라는 존재는) 내가 가서 ‘아이를 좀 돌봐주세요’하면 돌봐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해주고 그런 건데 (나는) 그런 걸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결핍은 비단 진윤혜 이사장뿐만의 일은 아니었다. 섬에 살고 있는 제주의 이주민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제주 엄마들을 위한 자조모임은 그렇게 시작했다. 

“자조모임의 특성은 서로가 같은 문제점을 공유하고 모임의 구성원들이 상호 지지하는 관계 속에서 그 문제점을 같이 해결해 나가고 연대한다는 데 있습니다”

‘토닥이 선배맘’은 설문대사협이 운영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발달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의 자조모임이다. 발달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던 진 이사장. 부모들이 자신을 돌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들을 돌봐줄 ‘친정 엄마’ 역할을 해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친정 엄마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친정 엄마 같은 역할을 해줄 사람을 찾으려고 이분들을 인터뷰했더니, 우리와 똑같은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의 얘기는 들리지 않고 공감이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자신과 똑같은 일을 겪었던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는 들어온다는 거에요. 우리 아이가 3살, 4살 때 장애 판정을 받고 멘붕(정신적 충격)이 왔을 때, 한 10살 정도 키우는 발달장애 아동 선배엄마가 ‘그래. 너 지금 정말 힘들거야. 네가 이 시기에는 이런 치료를 하면 좋아’라고 말하거나 ‘우리 같이 치료실 한번 가볼래’하면 그런 이야기는 들어온다는 거에요”

토닥이 선배맘 활동 모습/제공=설문대 사회적협동조합
토닥이 선배맘 활동 모습/제공=설문대 사회적협동조합

진윤혜 이사장과 설문대사협은 이제 조금 더 큰 꿈을 꾼다. 엄마들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마더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마더센터는 1980년대, 독일 여성들이 산업전선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의 양육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큰 집을 빌려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엄마들은 함께 모여서 얘기를 하거나 쉴 수 있으며 또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여성일하기센터도 있고 YWCA도 있고 그런데 이런 게 또 필요하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는데요. 공공에서 진행되는 탑다운 방식은 우리들의 필요는 듣지 않아요. 엄마들의 요구는 듣지도 않고 ‘야. 엄마들 이거 하나 필요하대’, ‘그럼 공간 하나 주면 되지 뭐’ 이런 식이에요. 이러면 아무 쓸모가 없어요. 제주형 마더센터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이유가 여기있습니다”

지역혁신 공동행동 제주간담회 진행을 맡은 김나솔 제주스퀘어 대표/사진=정재훈 기자
지역혁신 공동행동 제주간담회 진행을 맡은 김나솔 제주스퀘어 대표/사진=정재훈 기자

우리가 겪는 어려움…일과 사람의 연결로 풀 수 있다는 믿음 있어

이날 간담회에는 설문대 사협의 사례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혁신 사례들이 소개돼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간담회 1부는 ▲제주의 로컬푸드운동 현장(조상호 밥상살림 대표) ▲다양한 자조모임과 마더센터의 꿈(진윤혜 설문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클래식 음악인 지역과 호흡하고자 하다(고은정 제주도레미 대표) ▲감귤 작목반의 새로운 쓰임 : 환경예술 놀이터 조성사례(김지환 바다쓰기 대표) ▲제주스퀘어 웨이 : 유휴공간과 공간기획자의 연결(김나솔 제주스퀘어 대표) 등이 제주지역의 5개 혁신사례로 발표됐다. 

제주지역 로컬푸드 운동을 소개한 조상호 밥상살림 대표는 “유통은 결국 물류인데 섬인 제주는 기상이변 등으로 물류가 정지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물류가 정지되는 순간 그 손해는 고스란히 제주도민들이 볼 수 밖에 없다”며 “(농부는) 농산물 가격이 둘쑥날쑥해져서 문제고 (소비자는) 필요한 먹거리를 수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결국 생산된 부분에 대한 소득이 생산자들에게 제대로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생산-소비 구조가 돼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정책적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민간에서라도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로컬운동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조상호 (주)밥상살림 대표, 고정은 제주도레미 대표, 김지환 바다쓰기 대표/사진=정재훈 기자
왼쪽부터 조상호 (주)밥상살림 대표, 고정은 제주도레미 대표, 김지환 바다쓰기 대표/사진=정재훈 기자

이 밖에도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로 창작활동 및 체험교육에 나선 김지환 대표의 바다쓰기 이야기와 지역아동센터 및 양로원 등에서 클래식 음악 연주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중인 제주도레미의 고정은 대표 이야기가 소개됐다. 

간담회 진행을 맡은 김나솔 제주스퀘어 대표는 “제주에서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들이 일과 사람의 연결로 풀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제주에 남는 것과 모자란 것을 연결해 제주의 문제들을 풀어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변강훈 지역혁신 공동행동 준비위원회 공동 준비위원이 간담회 소감을 전하고 있다/사진=정재훈 기자
변강훈 지역혁신 공동행동 준비위원회 공동 준비위원이 간담회 소감을 전하고 있다/사진=정재훈 기자

오늘 간담회를 지켜본 변강훈 지역혁신 공동행동 준비위원은 “동토에 핀 꽃”과 같다며 간담회 소감을 전했다. 변 위원은 “만약 육지였으면 자조모임 만들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도 많았을 거고, 그러면 지원도 (제주보다는) 많이 받으셨을 수도 있다”며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핀 꽃 한송이가 아름답듯이 여러 부족한 지원 속에서도 스스로 혁신을 이끌어 오신 제주 혁신가분들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의 경험이 공동의 경험이 되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현장과 지역이 위기에 처해있지만)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이승아 문화관광체육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되는 정책에 대해 '현실에서 전혀 체감을 못한다'는 지적이 정말 와닿는다"며 "앞으로 정책(행정)과 여러분들의 갭이 줄어들 수 있도록 이런 자리가 만들어질 때마다 와서 참석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고의숙 교육위원회 의원(무소속)은 "평소 학교와 지역을 연결하고 도청과 교육청을 연결하는 등 자원 연계를 잘하는 의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며 "앉아서 듣는 내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또는 '다른 연결을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등을 고민했다. 앞으로 여러분들 더 찾아뵙고 더 연결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지역혁신 공동행동은 지역혁신 정책의 퇴행 사례를 짚어보고 이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혁신가들의 모임이다. 지난 22일 부산에서 첫번째 지역혁신가 간담회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제주(23일), 충북(4월 6일), 세종(4월 7일) 등에서 지역 혁신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지역혁신 공동행동 제주간담회 참석자 단체사진. 앞줄 왼쪽부터 변강훈 지역혁신 공동행동 준비위원회 준비위원, 이주원 지역혁신 공동행동 준비위원회 준비위원, 이승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장, 김나솔 제주스퀘어 대표, 고의숙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원회 의원, 김지환 바다쓰기 대표/사진=정재훈 기자
지역혁신 공동행동 제주간담회 참석자 단체사진. 앞줄 왼쪽부터 변강훈 지역혁신 공동행동 준비위원회 준비위원, 이주원 지역혁신 공동행동 준비위원회 준비위원, 이승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장, 김나솔 제주스퀘어 대표, 고의숙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원회 의원, 김지환 바다쓰기 대표/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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