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⑧
[인터뷰] 안병훈 빅이슈코리아 상임이사
2008년 방문한 일본에서 우연한 기회에 ‘홈리스 궐기 대회’ 목격
자신의 권리와 타인의 억울한 죽음 앞에 목소리 낸 ’홈리스’ 모습에 감화
자립의 주체로서 ‘홈리스’ 가능성 주목.. 잡지 판매 수익 홈리스와 나눠 그들의 자립 돕기로

(왼쪽부터) 빅이슈코리아의 박인숙 사무국장, 이선민 판매팀장, 안병훈 상임이사/제공=빅이슈코리아
(왼쪽부터) 빅이슈코리아의 박인숙 운영지원팀장, 이선미 판매팀장, 안병훈 상임이사/제공=빅이슈코리아

안병훈 빅이슈코리아 상임이사는 대학생이던 2008년. 중국 하이난 섬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생존자들이 제기한 재판을 촬영하기 위해 방문했던 일본에서 우연한 기회에 ‘전국 홈리스(Homeless, 주거취약계층) 궐기 대회’ 현장에 서게 된다. 재판 중 쉬는 시간 동안, 일본인 친구가 “함께 가볼래?”라고 해 따라나선 게 화근(?)이었다. 

이윽고 그의 눈 앞에 생경한 광경이 펼쳐졌다. 거리의 부랑자로, 냄새나고 무기력하게 동냥이나 하는 존재로 여겼던 ‘홈리스’가 자신의 권리(주거권)와 타인의 억울한 죽음(다큐멘터리 PD)을 부르짖으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것 아닌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는 그들 속에서 마음이 함께 뜨거워졌다. 안병훈 상임이사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동등한 사람이었고, ‘활동가’였다. 

“무기력하지 않았고 오히려 역동적이었죠. 그리고 천진난만한 모습도 있었고요. 어떻게보면 저와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더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무엇이 나와 이들의 삶을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하고요. 그렇게 이들이 권리를 찾아가는 활동에 나도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며칠 뒤 빅이슈 재팬(THE BIG ISSUE JAPAN)의 사노 쇼지 대표를 만났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창간한 대중문화 잡지로 홈리스들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기 위해 탄생했다. 당시 영국과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등에서 《빅이슈》가 발행 되고 있었다.

《빅이슈》는 홈리스가 잡지 한 권을 팔면 수익의 절반이 홈리스에게 돌아가는 구조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걸하는 대신 자신의 힘으로 노동해 자신의 경제적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일 경험 서비스다.

그 무렵. 한국에서도 ‘빅이슈 한국판 창간 준비’ 모임이 시작됐다. 2009년 안병훈 상임이사도 창간 모임의 인터넷 까페 회원으로 가입하고, 카페지기로 활동하며 빅이슈코리아 창간에 힘을 보탰고 1년 뒤인 2010년 7월 5일에 《빅이슈코리아》가 정식으로 창간됐다. 

창간 이후 빅이슈코리아는 홈리스 594명(재도전한 중복 수 포함 1340명)에게 빅이슈 판매원으로서 일 경험 서비스를 제공했고, 빅이슈 판매원이 된 홈리스들은 거리 판매 활동을 통해 235만부 이상의 빅이슈 잡지를 판매해 55억 원 이상의 자기 수익을 가져갔다. 이 중 54명의 빅이슈 판매원들은 재취업으로 연결돼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2023년 9월 기준)

빅이슈 판매원들과 시민들이 활짝 웃고 있다/제공=빅이슈코리아
빅이슈 판매원들과 시민들이 활짝 웃고 있다/제공=빅이슈코리아

홈리스를 격리 대신 지역사회로 포용하는 ‘가치소비’의 힘

물론, 처음부터 빅이슈코리아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실패할 것”이라며 우려했던 게 바로 빅이슈코리아였다. 

“시작할 때만해도 홈리스들은 일할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이런 인식은 정책에도 반영됐어요. 홈리스들을 보이지 않게 격리 수용하는, 시설 중심의 정책이 많았던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 있는 거죠. 이처럼 세간의 인식과 제도적 벽 앞에서 이들을 다시 지역사회에서 포용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힘이 되준 것은 결국 시민들이었다. 대학가 앞에서 《빅이슈》 잡지를 손에 든 판매원을 보면 젊은 대학생들은 얇은 지갑을 기꺼이 열어줬다. 특히 20~30대와 여성들이 빅이슈의 열렬한 응원군이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의 2016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빅이슈》는 젊은 세대(20대 35.5%, 30대 39.7%, 40대 21.6%, 50대 25.5%)의 구매율이 높고, 구입 의향은 남성(45.6%) 보다는 여성(52%)이 높았다. 10명 중 7명(71.9%)이 《빅이슈》 잡지를 구매하는 일은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안병훈 이사는 “가치소비는 시민과 홈리스 모두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빅이슈 판매원들은 거리에서 직접 시민들과 대면하며 잡지를 판매하시잖아요. 판매와 구매라는 단순한 사회적 거래의 과정이지만 독자께서 판매원을 만났을 때 눈인사를 하거나 안부를 나누고 응원을 하면 판매원은 ‘이 세상에 나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시죠. 그게  다시 일어서는 힘의 원동력이 돼요. 시민들도 마찬가지에요. 빅이슈 판매원의 용기 있는 도전과 외침에 위로와 힘을 얻는다고들 하세요. 나의 작은 소비와 응원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 힘이 되는구나 하면서 큰 효용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디지털 전환, 빅이슈코리아도 시작합니다

코로나19로 거리 판매와 빅이슈 판매원을 모집하는 활동 자체가 어려워지자 빅이슈코리아도 어려움을 겪었다. 판매량과 판매원 모두 절반으로 줄었다. 설상가상 미디어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온라인 판매 채널도 확장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이에 빅이슈코리아는 작년에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나섰다. Google.org가 후원한 AVPN 디지털혁신기금 프로젝트에 선정되며 제작될 수 있었다. 오프라인으로 대면하지 않고 온라인으로도 전자책 잡지를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빅이슈의 특징인 오프라인에서 판매원을 직접 마주보고 구입했던 경험을 ‘사용자 경험’으로도 이어지게 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에서도 판매원을 지정하고 전자책을 구매하고 판매 수익 일부가 판매원에게 가도록 하며, 판매원의 손편지와 같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담겨지도록 설계했다. 안병훈 이사는 “판매원과 시민 사이의 ‘인간적인 경험’은 곧 빅이슈코리아의 아이덴티티”라며 “빅이슈코리아의 아이덴티티를 살린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통해 디지털 전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제까지 단 한번의 컴플레인도 없었던 헤이그라운드에 고마워요”

빅이슈 판매원과 함께 촬영에 나선 시민과 직원들/제공=빅이슈코리아
빅이슈 판매원과 함께 촬영에 나선 시민과 직원들/제공=빅이슈코리아

“저희가 전에 서울혁신파크에 사무실이 있었거든요. 근데 혁신파크에 들어가기 전에는 거의 1년마다 한번씩 사무실을 옮겼어야 했어요. 건물에서 무슨 냄새만 나도 저희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죠. 근데 서울 혁신파크는 그에 반해 굉장히 포용적인 공간이었어요.”

(하지만 혁신파크가 사라지게 됐죠.)

“맞아요. 그래서 혁신파크처럼 포용적인 공간을 찾았어요. 그 때 헤이그라운드(성수 시작점)에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요?)

“처음에 헤이그라운드 만들어질 때도 빅이슈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이셨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이곳에서 공간을 사용한 적도 있었고요. 그 때 받았던 환대의 경험이 다시 이곳으로 둥지를 트게 된 이유죠.”

(실제로 와보니 어때요?)

“공감을 받고 있다고 느껴요. 여기 계신 분들은 취약계층에 대해서 눈살을 찌뿌리거나 불편해하기 전에 저희를 공감해주려고 노력해주세요. 그게 저희한테 느껴지고요. 그래서 아직까지 불편한 시선으로 클레임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헤이그라운드가 그만큼 포용력 있는 공간이라는 걸 의미하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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