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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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9월 1일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하면서 2000여억원이었던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분야 예산이 대폭 삭감된 이후 사회적경제 생태계는 전무후무한 혼돈의 상태에 있습니다. 사회적경제 관련 단체들의 유감 표명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아랑곳없는 정책 추진에, 이런저런 횡행하는 소문아닌 소문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로 파자(破字)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면 위험이 다가오면 그냥 대처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라서 뒤따라 닥쳐올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맞이하고 헤쳐 나갈 것인지는 우리의 자세 전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자호란(1636년)으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 파천(播遷)을 하는데 이때 김상헌의 척화파(斥和派)와 최명길의 주화파(主和派)가 있었습니다. 다들 명분과 실리를 앞세웠지만, 역사는 사실 그대로만 받아들여야 하기에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근본적으로 보면 작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가 강해져야 한다는 자강론(自强論)이지 싶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사회적경제를 그 어느때보다 기초부터 튼실하게 더는 흔들리지 않게 다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먼저 팔 걷고 나서야 할 일은 사회적경제를 일반 시민이자 고객에게 제대로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좋은 정책과 제도도 당사자가, 그것도 주요 참여자가 모르는 상태에서는 힘을 받지 못합니다. 여타 많은 실태조사에서도 80%~90% 이상의 시민들이 사회적경제를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경제를 우리만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두고 있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해 온 사회적경제 교육이나 홍보가 주변의 예비군 교육이나 성차별 교육 처럼 형해화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봐야 합니다. 교육은 했으나 남는 것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는 뭐든 제대로 해야 합니다. 진정 사회적경제가 지향하는 바가 취약계층의 단순 일자리 창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을 보다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고, 그 또한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교육과 홍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피부로 직접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이웃을 필요로 할 때면 항상 이웃이 함께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기꺼이 그들에게 이웃이 되어줄 때만이 그들 또한 나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사회적경제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입니다.

또한 정부의 사회적경제에 대한 진실된 관심과 각종 중간지원기관의 역량 강화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중간지원조직을 직영이든 위탁이든 형태를 불문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간지원조직이 실무적인 사회적경제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데도 예산이나 정책의 독자성이 없다고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회적경제 관련 동일한 업무가 실질적으로는 위임되지 않고 지자체의 직무분장 표에 예전처럼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기실 지난번 발표된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으로 혼돈에 빠진 사회적경제 생태계의 현장과 달리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크게 요동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저 만의 착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되었든 업무의 중복이다 보니 중간지원조직 종사자들은 그때그때 맡겨지는 업무만 했던 것이고, 독립성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업무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적자생존의 한 방편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겪은 10여년의 대관업무 경험에서 볼 때 대관업무의 성패는 끝없는 설득(?)과 더 나은 대안의 제시였습니다. 중간지원조직이 제시하는 양질의 정책이나 제도를 (지방)정부가 마냥 거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단코 우리의 역량 강화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올바르고 적확한 이해와 적용, 우리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에 꼭 필요한 맞춤형 사업모델 의제시나 진단, 부상하는 ESG나 Chat GPT 등을 지역 사회적경제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해야 하는지를 현장이 쉽게 이해하게끔 풀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당사자 조직이라는 명분(名分)으로 중간지원조직의 운영주체가 되거나, 지원조직의 장이나 구성원을 독립적으로 채용하거나, 또는 해당 지역 출신으로 제한하거나 해서는 역량의 강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의 급여, 복리후생 등 노동조건도 전문성을 축적하기에 역부족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경제를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협의로 바라보기보다는 훨씬 더 확장해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시장경제의 한 부분, 대안 정도로 머물러 있기에는 우리에게 그다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작금의 과도한 시장경제, 돈과 물질 위주여서 지속 불가능해 보이는 자본주의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거나 또는 그들이 누려야 되는 미래를 가불(假拂)해서 그것도 과도하게 쓰는 몰염치(沒廉恥)한 것이기에,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사회적경제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따라서 튼실한 사업 모델을 통한 현장의 사회적 기업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중간/성장 지원조직, 그리고 그런 사회적경제를 일상화하는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판이 바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일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바로 우리 모두가 원하는 ‘제 n차 사회적기업 활성화 계획’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날을 앞당기는 것은 이제 오롯이 우리의 몫입니다.

한봉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SE코디/前 SK 전남도시가스 대표이사
한봉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SE코디/前 SK 전남도시가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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