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지현의 (불편한) 시선] ⑩ 11월 24일 일회용품 규제 1년, 앞으로 전면 시행 아니고, 전면 철회라고?

11월에 들어서자 아파트 현관 정보 게시판 게시물이 싹 바뀌었다. 그중 가장 왼쪽에 걸린 포스터에 눈길이 갔다. ‘일상에서 1회용품이 더 줄어듭니다’라는 제목으로 11월 24일부터 시행되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알리는 환경부와 인천광역시(기자 거주지역)가 제작한 홍보 포스터(아래 사진)였다. 

아파트 현관 정보 게시판에 부착돼 있던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알리는 포스터. /사진=염지현 기자
아파트 현관 정보 게시판에 부착돼 있던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알리는 포스터. /사진=염지현 기자

지난 해 11월 24일, 환경부는 외식업 매장에서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이른바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일회용품 사용 금지 품목을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우산 비닐과 주로 야구장에서 사용했던 플라스틱 응원용품(포스터 문구에서 확인 가능)까지 확대했다. 또 마트나 편의점에서 손쉽게 제공받던 일회용 봉투와 쇼핑백을 무상제공할 수 없게 하면서 준수사항을 강화하는 행보를 보였다. 강력한 새로운 규제이니만큼 시민이 제도 시행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환경부는 1년 동안 계도기간(2022년 11월 24일부터~2023년 11월 23일까지)을 두기로 했다. 

계도기간 종료일 앞두고, 과태료 부가 유예

원래대로라면 2023년 11월 24일, 자원재활용법 계도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매장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다 걸리면 사업주가 과태료를 물기로 했다. 일회용품을 사용한 사업주는 위반 행위에 따라 5만~100만 원 사이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했고, 만약 적발 횟수가 증가하면 경우에 따라 과태료는 최대 300만 원까지 오른다고 했다. 

그런데 11월 7일 임상준 환경부 차관이 발표한 ‘일회용품 관리방안’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임 차관은 환경부 브리핑에서 “현장 여건을 철저히 살피지 못한 채 조급하게 정책이 도입된 측면이 있었다”면서, “정부에서 1년간의 계도기간을 거쳤지만, 아쉽게도 충분한 준비와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일회용품 사용 규제에 대한 정책이 유지돼야 하는 점은 동의하나,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 정부의 일방적인 규제와 처벌로는 안 될 것 같아 정부는 한발 물러난다는 설명이었다. 

/출처=Getty Images Bank
/출처=Getty Images Bank

물론 일회용품 규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음식점, 커피전문점, 편의점, 마트 등 관련 업계를 운영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7배까지도 늘어났다는 소식을 다양한 채널로 접할 수 있었다. 관련 종사자 말에 따르면, 플라스틱 빨대를 친환경 쌀 또는 옥수수 빨대로 대체하면 그 비용의 차이가 무려 7배(종이 빨대는 3배)에 달한다고 했다. 이처럼 비용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다.

한편, 비용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응대하는 고객의 볼멘소리를 감당해야 하는 것도 모두 사업주의 몫이다. 플라스틱 빨대를 대신하는 종이 빨대는 음료에 담겨 금방 흐물거리게 돼, 고객 불만이 쇄도한다고 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정부가 시키는대로 따르려고 비용도 훨씬 비싼 종이 빨대를 준비했는데, 고객이 쓰기 싫다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주들은 “환경을 지키려면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서, “대체품을 마련하는 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한 현실”이라고 한목소리로 의견을 모았다. 즉, 정부가 나서서 대체품 가격을 조절하거나 관련 지원금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환경부, 일회용품 감량정책 포기한 바 없다고 주장

지난 7일, 환경부가 발표한 ‘향후 일회용품 관리방안’을 두고 지금까지 일회용품 줄이기 활동에 앞장서 온 시민들은 물론, 환경 관련 활동가들의 반발이 거세게 이어졌다. 탈플라스틱이라는 국제적 목표에 동참하고, 국정과제(89-1)인 일회용품 사용제한 및 폐기물 발생 저감을 달성하려면 이 같은 환경부의 행보는 후퇴하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환경부는 다음 날 다시 환경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우산비닐, 응원용품의 사용 제한은 유지하되, 소상공인이 우려하는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비닐봉투에 대해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며, “정책 후퇴가 아닌 현장적용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배려”라고 입장을 발표했다. 일회용품 감량정책은 절대 포기한 바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일반 시민의 생활 속에 스며든 ‘편리함의 관성’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감시망이어서다.

‘아, 매장에서 종이컵 이용 못하지? 텀블러 챙겨가야겠다.’
‘마트에서 이제 비닐봉투 안 주지? 장바구니 챙겨가야겠다.’
‘집앞 커피 전문점에 텀블러 세척 시설이 들어왔대!
다 먹은 컵은 거기서 씻어서 새로 주문해야겠다.’
‘나는 종이 빨대는 흐물거리는 식감이 별로더라,
이번 기회에 휴대용 실리콘 빨대 하나 마련했어.’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일상에서 소소한 변화를 받아들였다. 저마다의 이유로 각자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까지 신의를 지키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닐 1장, 종이컵 1개, 플라스틱 빨대 1개씩 아끼며 지구가 망가지는 속도를 늦추는데 동참한다는 사명감을 띄며 지내왔다. 

드디어 11월 24일부터는 일회용품 쓰레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겠구나 기대했는데, 그 최소한의 감시망조차 당분간 사라진다니 유감이다. 물론 정부의 규제와 나의 행보는 별개다. 정부가 어떻게 규제하던, 규제하지 않던 우리는 그동안 갈고 닦은 신의를 지키며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은 모두의 참여를 독려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정부를 따를 때 서로 더 큰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서로의 눈치만 보다가 결과적으로 퇴보하는 건 정말 비겁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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