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농부들의 기후행동 ①

1980년 남인도 케랄라 산악지역의 향신료 재배 소농들과 젊은 가톨릭 신부가 설립한 비영리조직 PDS(Peermade Development Society)는 관행농법의 폐해와 산업화된 대규모 농식품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 속에서도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며 살고 있다. PDS가 위치한 서고츠(Western Ghats) 지역은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곳이며, 생물다양성을 기반으로 고대부터 후추, 카다멈, 생강, 강황 등 향신료의 원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들은 쉽지 않은 유기농법 전환과 인증 및 모니터링 체계, 전체 가치사슬의 규모화와 전문화, 혁신적인 리더십, 선진국 소비자단체들과의 공정무역, 장기적인 파트너십 등을 쌓아왔다.

본 기획기사는 공정무역과 협동조합 분야에서 연구하고 활동해온 두 명의 연구자들이 인도 최남단 케랄라 지역을 방문하고 연구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2022년 6월~23년 7월). 이를 통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향신료 농부들의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소개하고, 여러 도전과제 및 어려움 속에서 이를 극복하며 도전해온 노력의 흔적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전세계인의 과제인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케랄라의 향신료 농부들과 같은 농식품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이해와 공감, 적극적인 협력과 연대가 필요함을 알리고자 한다.

2023년 1월 19일, 서울에서 인도 남부 케랄라의 코친 국제 공항으로 가는 직항은 없었다. 태국 방콕, 스리랑카, 인도 델리나 뭄바이 또는 싱가폴을 경유해야 했다. 우리는 비행시간과 경유 시간이 가장 짧은 싱가폴을 경유지로 선택, 약 11시간의 비행 후에 도착했다.

코치로 가는 동안 2002년 혼자 배낭여행을 한다고 인도 델리 공항에 내렸을 때가 떠올랐다. 오늘처럼 늦은 밤이었고 공항은 한국의 소도시 버스터미널 같았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가자마자 수 십명의 사람들이 나를 크게 둘러싸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은 내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강렬했다. 낯선 이방인을 노골적으로 보는 그 시선은 여행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인도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경험으로 이런 이유로 인도여행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코치는 인도의 델리와는 달랐다. 잘 만들어진 공항은 매우 깨끗했고, 시선이 느껴질만큼 나를 응시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심지어 동남아시아의 여느 공항에나 있는 택시 기사의 호객 행위도 없었다. 인도가 주마다 문화도 언어도 다르다고 하더니 이를 몸소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인도를 방문하는 내게 코친 공항은 인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주었고, 케랄라의 긍정적 첫인상은 현지 조사 내내 이어졌다.

다음날 피디에스 오가닉 스파이시스(PDS Organic Spices)의 마케팅 담당자 제이콥 조스(Jacob Jose)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PDS가 있는 이두키(idukki) 지역은 코치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데 대중 교통을 이용하려면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코친 공항에서 PDS까지 125km 거리로, 구불구불 높은 산들을 지나서 도착한다. 차로 10~20분 간격으로 크고 작은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제이콥은 이러한 공간 구성은 인도 케랄라에만 있는 독특한 특성이라고 강조했다. 도시와 지역의 균형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이었을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집이었다. 차도를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서울 성북동이나 평창동에서 볼만한 대규모 저택이 자주 눈에 띄었다. 깨끗하게 페인트로 칠한 2층 집이 꽤나 화려했다. 해외나 도시에서 일하는 자식들이 부모가 사는 집을 새로 지어주기도 하고, 대출을 받아서 집을 짓기도 한단다. 2020년 케랄라 이주 조사(Kerala Migration Survey)에 따르면, 케랄라인 약 212만 명(케랄라 전체 노동 인구의 17~18% 규모)이 걸프 지역 국가들로 이주하여 일을 하고, 일부를 케랄라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조사 기간 동안 면접을 진행한 농부들도 자식들이 해외에 일을 하러 간 경우가 있었다. 교육 수준은 높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케랄라의 젊은 청년들은 오일 머니를 벌기위해서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으로 간다.

구글맵으로 본 코친 공항에서 PDS 까지 거리 / 출처=구글맵 캡쳐
구글맵으로 본 코친 공항에서 PDS 까지 거리 / 출처=구글맵 캡쳐

높은 산을 굽이굽이 3개쯤 넘어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에 가는 중에 산속, 산중턱, 산꼭대기에도 집이 있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인간의 생존력과 강인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더키에 가까워 질수록 기온이 낮아지고 시원했다. 창문을 열었을 때 차 안의 에어컨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바람이 불어왔다. 29도를 육박했던 코치와는 달랐다.

조사를 위해 방문한 지역 / 출처=구글맵 캡쳐
조사를 위해 방문한 지역 / 출처=구글맵 캡쳐

PDS 본부와 공장, 농부들이 사는 이더키 지역은 해발 3천피트(약 1천미터) 높이 정상에 위치해 있다. 케랄라의 높은 산 중에 형성된 마을로 이들은 그곳을 하이 레인지(high range)라고 부른다. 산은 구릉같아서 산 위에 마을을 형성하기 좋은 지형이었다. PDS는 케랄라 이두키, 카타파나(Kattappana), 쿠티카남(Kuttikkanam) 지역의 농부 및 주민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현지 조사를 하는 동안 농부들을 만나러 다니는 길은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곳도 있었다. 농사 짓는 땅 또한 대부분 경사가 있는 가파른 곳이었다. 매일 이곳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부들은 얼마나 몸이 고될까?

우리가 그곳에 간 이유

PDS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공정무역을 하고 있다. 자연드림 매장과 온라인몰을 통해 공정무역 유기농 후추를 조합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공정무역 유기농 후추 / 제공=㈜쿱무역
공정무역 유기농 후추 / 제공=㈜쿱무역

아이쿱은 연구자들의 객관화된 시선으로 공정무역 후추 생산자 단체와 농부들을 살펴보길 희망했다. 현지 조사 전에 온라인으로 PDS와 회의를 한번 진행했고, 한국에 출장온 마케팅 담당자 제이콥과 괴산자연드림파크에서 1박 2일을 보내면서 PDS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Jacob은 PDS에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마리안 대학(Marian College)을 졸업하고 4년간 여행업에 종사하다가 PDS의 수출 담당 조직 피디에스 오가닉 스파이시에 합류하여 마케팅 및 공정무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PDS 사람들 / 사진=김선화
PDS 사람들 / 사진=김선화

우리가 방문하려는 케랄라 이두키 지역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온다. 폭우로 인한 산사태, 도로 파손 등의 피해가 발생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은 날씨가 가장 좋으며 다양한 작물을 수확하는 시기인 12월에서 2월 사이 방문을 추천했다. 우리는 1월 중순부터 총 18일간 PDS 활동 지역과 코치에 머물며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머무는 동안 수백명의 사람을 만났다. PDS 본부에서 일하는 사람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공정무역 유기농 농부 백여명, 자조모임의 대표와 애니매이터 수십명 등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집과 일터를 참여 관찰했다. 일대일 면담도 하고, 여러명이 함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농부들의 상황을 상세히 알기 위해서 설문도 진행했다. 아무리 현지 조사 전에 PDS에 대해서 조사를 하였더라도 현장을 방문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하고 있는 사업과 사람들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농부의 자녀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가 궁금해서 학교도 안가고 기다리고 있었다.
농부의 자녀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가 궁금해서 학교도 안가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도 사회에 대한 이해, 케랄라주의 정치, 사회, 문화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의 사업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밤마다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하고 정리를 하기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정이 되어갔다.

조사를 마치고 한국에 귀국한 뒤에 인도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현장에서 파악되지 않은 내용은 관계자들에게 추가로 질문하여 보충하고 있다. 인도로 출발하기 전에 우리가 상상했던 PDS 조직과 현장에서 알게 된 PDS 조직은 많이 달랐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규모가 크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었으며, 지역에 영향력이 큰 조직이었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상세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협동조합경영학 박사, 주로 협동조합, 공정무역, 사회적기업의 제도 변화 및 발전 과정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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