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모금가협회, '투명성을 넘어 신뢰의 시대로' 토크콘서트 개최
작은 비영리 단체 스스로 자가진단할 수 있는 투명성 가이드 공개
복잡한 회계 투명성 확보에 휩쓸려 중요 미션 놓치지 않도록 사회적 지원 필요

"똑똑한 기부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익단체의) 재무적·회계적 투명성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내가 낸 기부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서 사회문제 해결에 실제 성과를 내는지 더 신경 씁니다. '투명성(에 갇힌) 프레임을 깨자'는 모금가협회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합니다." - 조성도 마이오렌지 대표.

경기침체가 이어진다. 모금활동도 어렵다. 때때로 불거지는 일부 단체의 기부금 유용 의혹은 (사실 여부를 떠나) 규정을 잘 지키는 단체의 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투명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세법 등 관련 규정은 빠르게 바뀐다. 작은 단체는 회계사도 어려워하는 규정을 챙기다가 정작 해야 할 미션에 집중할 동력을 잃기도 한다. 

현장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정해진 규정을 수세적으로 지키는걸 넘어 현장이 스스로 투명성 관련 이슈를 들여다보고 주도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모금가협회(이사장 허탁)는 24일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투명성을 넘어 신뢰의 시대로'를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하나금융그룹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후원했다. 현장에 85명이 함께 했고 유튜브로 170명이 참여하는 등 관심을 모았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문제가 없는 시대는 없다. 다만,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잘 모를때 두렵고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해진 의무를 따라가는데 급급하기 보다 스스로 체크하고 실행하는게 중요하다는걸 강조하려고 행사를 기획했다"며 "(투명성을 넘어) 신뢰의 시대로 나아가려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와 김소영 한미회계법인 이사, 윤지현 한국모금가협회 전문회원이 투명성 가이드와 체크리스트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제공=한국모금가협회
(왼쪽부터)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와 김소영 한미회계법인 이사, 윤지현 한국모금가협회 전문회원이 투명성 가이드와 체크리스트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제공=한국모금가협회

비영리 단체 운영 투명성 확립...떠밀리지 말고 주도적으로

모금가협회는 이날 '소규모 단체를 위한 투명성 가이드'를 공개했다. 기부금품법, 법인세법, 소득세법 등 규정에 따라 공익단체가 챙겨야 하는 내용을 체크리스트와 함께 정리했다. 예를 들어, '고유목적 사업에 기부금 집행' 항목에서는 ▲지출액의 80% 이상을 직접 고유목적사업에 지출 ▲최근 2년 이내에 정관상 고유목적사업 집행기록이 있어야 함 등을 놓치지 말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전담인력을 두고 대응하기 힘든 작은 단체가 의도치 않게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주목해 평소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꼭 지켜야 하는 규정과 별개로 '매년 정기적으로 정관/규정 등에 대해 내부자 교육을 진행한다'와 같이 기부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실행하면 좋은 항목들도 자율점검표로 정리했다. 황 이사는 "신입직원이 정관 한 번 보지 않고 5년 이상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하며, 스스로 신뢰를 쌓아나가고 이를 외부에 잘 알리는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투명성 가이드와 체크리스트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열린 첫번째 세션에서 김소영 한미회계법인 이사는 "공익법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많이 하는데 업무 일정상 이미 오류 상황이 발생한 후에 알려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확인하는게 중요한데 국세청과 행정안전부 등 정부의 자료가 너무 두껍고 어렵다"며 "공익법인 운영에 필요한 정보의 접근성이 제대로 보장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윤지현 모금가협회 전문회원도 "과거 공익단체에서 일할 때 회계법인이 제공한 비영리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내가 회계를 전공했음에도 이해하기 힘들더라"며 "자원이 풍부한 협단체에서 작은 단체를 멘토링 하고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투명성이 모든걸 다 열어서 보여주는건 아니다" 라며, "각 단체에 적합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지키는 프로세스를 만들고, 그걸 외부에서 볼 수 있는 접근성을 보장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황신애 이사는 건강한 기부문화를 위한 3대 원칙으로 ▲투명성 ▲책무성 ▲자율성을 강조했다. '투명성'은 단체의 운영 상태를 알 수 있는 정보공개에 관한 원칙이다. 명확한 원칙에 따라 일관된 자료를 작성하고 외부에 공개하라는 것이다. 법적 의무가 아니더라도 기부금품 모집등록증과 영수증 발급 기준을 홈페이지에 올려놓는 등 기부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장치를 스스로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황 이사는 "이런 조치를 취하는건 귀찮은 일이지만, 우리의 불편함과 기부자의 신뢰는 비례해서 늘어난다"며 "양쪽의 밸런스를 맞추고 최적화해놓으면 귀찮음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책무성'에서는 거버넌스와 사람, 재무적 책임성, 사업성과를 공익단체가 반드시 지킬 3개 영역으로 제시했다. 황 이사는 이중에 사업 성과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사업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조직도 필요하고 재무적 책임성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율성'은 주변의 잘하는 단체에 시선을 맞추고 모방하는 대신 자체적인 고유한 장점을 고민하고 실행하라는 의미다. 

모금가협회는 25일 오전 '투명성을 넘어 신뢰의 시대로' 캠페인 페이지 비욘드T(Bryond T)를 개설하고 이러한 제안과 실행 방법을 공개했다. 공익단체들이 투명성 이슈를 뛰어넘어 본연의 공익 역할에 충실하고 기부자와 신뢰를 단단히 하자는 의미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왼쪽부터)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와 조성도 마이오렌지 대표, 김시원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가 비영리 투명성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제공=한국모금가협회
(왼쪽부터)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와 조성도 마이오렌지 대표, 김시원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가 비영리 투명성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제공=한국모금가협회

참고서라도 사주고 공부 잘 하라고 해야...성과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 전환 필요

외부 전문가 패널과 함께 진행한 토크콘서트에서는 좀더 날것의 의견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비영리의 투명성이 주제인 토론회나 컨퍼런스는 참여하지 않는다. '비영리는 투명하지 않다'는 전제가 깔린것 같아서다" 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과연 비영리 활동을 활성화시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활성화 보다는 규제에 초점을 맞춘다"고 비영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편집자 주: 방 대표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실이 있다. 기부금을 다루는 법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49년 제정된 '기부통제법'이 등장한다. 이 법은 이후 '기부금품모집금지법', '기부금품모집규제법' 등 규제 중심의 이름으로 이어지다가 2006년에 이르러서야 현행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규제 관점의 시각이 많이 반영돼있다는 지적이다.) 

방 대표는 "도덕성만 강조할게 아니라 (실질적인) 도덕성을 갖추도록 돕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영세한 소상공인들은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많은 정보와 지원을 얻지만 작은 비영리 조직들을 위한 국가 조직은 없다"고 꼬집었다. 조성도 마이오렌지 대표도 "직접 스타트업을 해보니 우리나라는 기업 창업 지원이 참 많은걸 느꼈다"며 "그런데 마이오렌지가 다루는 비영리 영역에 대한 지원은 크게 부족함을 느낀다"고 거들었다.

김시원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편집국장은 "개인적으로, 투명한 것만을 강조하는게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빵을 만드는게 중요한데 '이 빵 만드는데 밀가루 얼마짜리 썼느냐' 라고 하는 것이다. 투명성만 강조하다가 정작 바꾸려는 세상의 변화에 치중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문제(부담)를 소규모 단체에만 지우는 경우가 많은데 '투명해야지' 라고 강요는 하지만 시스템이나 제도적 지원이 없다"고 지적했다.

조성도 대표는 기부 생태계 활성화와 관련해, 기부자들로부터 오는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비영리 기관의 재무적 투명성에 너무 집중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요즘 기부자들은 투명성 관련해서 기본을 지키는지 정도만 확인되면 내가 낸 기부금이 얼마나 많은 임팩트를 창출했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더이상 측은지심으로 기부하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런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기부자들이 자신의 기부 내역을 한 곳에서 파악해 관리하고, 기부단체별 평점과 리뷰를 확인할 수 있는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오렌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 단체가 빵을 제일 맛있게 만드는지 실제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김시원 편집국장은 "(조 대표께서 익숙한 기부자들과는 달리) 여전히 기부자들 중에는 투명성을 '돈을 깨끗하게 잘 썼다는, 아끼고 다른데 안썼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며 "물론, 단체들 역시 '이렇게 우리가 좋은 사업을 했어요' 라며 자기만족에서 끝나는 대신 실제로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기부자들과 잘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결국 공익단체가 실제로 창출하는 사회적 성과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황신애 이사는 "단체 스스로 투명성을 갖춰나갈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저것만 다 지키면 일 잘하는 곳인가?' 라는 생각도 했다"며 "복잡한 체크리스트를 채우는 대신 '우리 기부금영수증 발급한다' 라고만 말하면 투명성은 다 설명이 되고 각 단체는 본연의 사회 가치 창출에 매진하는 시대가 오도록 함께 고민해나가자"고 말했다.

행사를 마치고 현장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제공=한국모금가협회
행사를 마치고 현장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제공=한국모금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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