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해결사] ② 전국 최초 AI 영재학급 개설, 경희여고 홍창섭 선생님과 함께 실생활 문제를 AI로 해결하는 혁신 활동에 집중하다!

※ 편집자주

10대가 경험하는 일상 생활 속에도 크고 작은 불편함이 있다. 물론 현실은 밤늦게까지 학업에 매달려야 하는 대한민국 10대이기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시간을 쪼개 생활 속 크고 작은 문제를 개개인이 나서서 직접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면? 그것도 학교 수업시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탁월한 누군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프로젝트 수업이 아닌, 모두 함께 각자의 장점을 발휘‘문제 해결 전략’을 경험할 수 있는 현장으로 찾아가 봤다. 통통튀는 아이디어와 해결 전략으로 완전 무장한 ‘우리 학교 해결사’들의 이야기를 시리즈 기획으로 만나본다. 작은 사회의 경험이 모여 큰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0대가 일상 생활 속에서 겪는 불편은 생각보다 아주 사소하다. 이 불편은 주로 청소년 특유의 고착화된 ‘귀차니즘(‘귀찮-’이라는 단어에 영어 접미사 ‘-ism’을 붙여서 만든 신조어, 만사가 귀찮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이 문제들은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는 아니므로, 학교 현장에서 이런 사소한 문제가 발견돼도 대부분 그냥 지나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학교가 시스템을 미리 갖춰 그들의 사소한 고민에 귀기울여 준다면, 그들의 눈빛은 달라진다. 직접 문제 해결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통통튀는 그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시너지는 상상 이상으로 ‘새로운 힘’을 갖는다. 실제 그런 친구들이 있어 직접 만나고 왔다. 이번에 만나볼 친구들이 집중한 생활 속 문제는 쓰레기 문제다. 

책 속에 갇힌 이론 말고,
이론을 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진짜’ 공부

서울 경희대학교 캠퍼스 안에 위치한 경희여자고등학교는 ‘인문학 중심 교육’으로 잘 알려진 학교다.  인문학과 더불어 이공계 쪽 교육에도 힘을 싣고 싶었던 홍창섭 경희여고 수학교사는 수년 전부터 인공지능 교육이 특화된 ‘AI 영재학급’을 기획해 왔다. 그 노력의 끝에 2021년 경희여고는 전국에서 최초로 공식적으로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AI 영재학급’ 운영을 승인받았고, 더불어 경희여고는 AI 선도학교, AI 데이터 리터러시 모델학교, 온라인 콘텐츠 교과서 선도학교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런데 홍 교사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기존에 잘 알려지고 소개된 인공지능 교육과 관련된 교육과정이 새롭지 않고 꽤 오래 전 과거에 머물러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홍 교사는 2021학년도와 2022학년도 2년 동안 직접 ‘AI 영재학급’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실생활 속 문제를 AI로 해결하는 융합적 문제 해결 활동’을 경험하도록 교육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교육과정을 새롭게 정비하기 위해 학교 밖 전문가는 물론, 전문 기관과의 협업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특히 학교 가까이에서 인공지능을 현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김혁기 경희의료원 영상의학과 연구원(인공지능 전문가)을 수업 파트너로 섭외했다. 김 연구원이 합류하고 나니 경희여고 AI 영재학급은 이론과 실습의 균형을 갖출 수 있게 됐다. 홍 교사는 “김혁기 연구원은 병원에서 인공지능 데이터를 연구하면서 우리 주변의 사회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인공지능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고민하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2학년 선택 과목 중에 ‘인공지능 기초’ 교과와 ‘인공지능 수학’ 교과가 있다. 하지만 교과는 아무래도 이론 중심 수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다루던 인공지능이 책 안에 머물기 마련이다. 하지만 홍 교사는 김 연구원과 힘을 합쳐 인공지능 교육이 융합적 문제 해결 활용 교육으로 잘 전달되는 방향으로 영재학급 수업을 설계했다. 영재학급에 참여한 학생들은 컴퓨터 언어를 다루는 수준과 경험이 다르고, 이론 수업을 들으며 흡수하는 능력도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의기투합해 눈에 보이는 성과가 드러날 수 있도록 고심했다.

그 결과 AI 영재학급의 교육과정에는 인공지능의 기초 개념을 다지며 함께 고민해야 할 윤리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시간, 인공지능 속에서 다루는 수학, 파이썬이나 아두이노와 같은 컴퓨터 언어를 이해하고 이를 다루는 방법, 개발자와의 만남, 데이터 전문가와의 만남, 관련 서적 작가와의 만남은 물론, 한국마이크로소프트사와 구글코리아 견학 등 알짜 프로그램으로만 채워질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초(왼쪽 펼침면)’와 ‘인공지능 수학(오른쪽 표지)’ 교과서의 모습. /사진=염지현 기자
고등학교 2학년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초(왼쪽 펼침면)’와 ‘인공지능 수학(오른쪽 표지)’ 교과서의 모습. /사진=염지현 기자

경희여고 AI 영재학급의 도전은 학교안 에서만 머물지않았다. 학교 밖에서 열리는 여러 가지 공모전에 참석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영재학급 학생들은 3-4명씩 팀을 이뤄 ‘ICT 이노베이션스퀘어 AI 공모전 피우다 프로젝트’와 ‘웅진 게임 개발 공모전’ '빅데이터·AI경진대회' 등에 참가했다. 

‘ICT 이노베이션스퀘어 AI 공모전 피우다 프로젝트’의 주제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경희여고 학생들은 이 공모전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재활용 분리수거 시스템’을 개발해 출품했다. 교실 안 분리수거함이나 집앞 분리수거장에 분리수거가 잘 안 된 쓰레기들을 보며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김혁기 연구원의 조언도 한몫했다.

“요즘 워낙 플라스틱 쓰레기 종류도 많고, 재활용이 되는 것, 안 되는 것 구분도 어렵잖아요. 사실 비닐로 씌워진 포장지는 다 따로 분리해서 버려야 하는데, 그냥 버려진 플라스틱 음료수 병은 교실에서도 아주 쉽게 볼 수 있거든요. 그걸 애들이 일부러 그렇게 버린다기 보다는, 방법을 잘 몰라서 대충 버리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인공지능은 정확하잖아요. 우리가 잘 모르는 재활용 쓰레기를 카메라로 인식해 인공지능이 알아서 판단하고 분류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의견으로 정리가 됐어요.” - 경희여고 2학년 김재희 학생

“실제로 쓰레기 데이터가 필요해서 쓰레기통을 뒤졌어요. 학교 안에 있는 쓰레기통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모아 하얀 배경으로 사진을 하나씩 찍어서 데이터를 마련했어요. 700장 정도 되더라고요. 이렇게 마련한 이미지 데이터로 인공지능이 이미지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물론 여러 명이 각각 다른 핸드폰으로, 조금씩 서로 다른 분류 기준으로 종종 오류가 발견되긴했지만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프로그램을 완성했습니다.” - 경희여고 2학년 이서영 학생

이렇게 완성한 프로그램은 교육용 키트를 활용한 컨베이어 벨트와 쓰레기를 분류하는 로봇팔을 접목해 직접 구현했다. 물론 데이터 수도 턱없이 부족했고, 인공지능의 정확도도 높은 편은 아니었다. 컨베이어 벨트와 로봇팔과 같은 하드웨어와의 연결도 매끄럽지 못했지만, 어쨌든 성공이었다. 

그 결과  주로 기업과 대학원생들이 팀을 이뤄 참가했던 피우다 프로젝트에서, 경희여고 학생들은 장려상을 수상했다. 수상팀 중에 고교생은 경희여고 친구들이 유일했다. 

(뒷줄) 왼쪽부터 경희여고 2학년 손윤하, 김연수, 승지유, 김선영, 강민정 학생과 홍창섭 교사.​​​​​​​ (앞줄) 왼쪽부터 경희여고 3학년 박혜진, 2학년 이서영, 윤예나, 김재희 학생. /사진=염지현 기자
(뒷줄) 왼쪽부터 경희여고 2학년 손윤하, 김연수, 승지유, 김선영, 강민정 학생과 홍창섭 교사. (앞줄) 왼쪽부터 경희여고 3학년 박혜진, 2학년 이서영, 윤예나, 김재희 학생. /사진=염지현 기자

한편, 영재학급에서의 경험은 여러 친구들의 진로 고민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이번 인터뷰에 참석한 9명의 학생 중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인공지능을 계속 다룰 수 있는 분야로의 진로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계된 분야로의 진로를 설계한 친구도 있다.

프로젝트를 참여하며 디자인을 담당했던 2학년 강민정 학생은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이돌 그룹 뮤직비디오에서 발견한 AI 캐릭터 때문에 인공지능 분야에 처음 흥미를 느꼈는데, 피우다 프로젝트와 게임 만들기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조금은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며 진로까지도 연결하게 된 것이다. 

왼쪽부터 경희여고 2학년 김재희, 이서영, 강민정 학생은 웅진 게임 개발 공모전에 함께 참여했다.  /사진=염지현 기자
왼쪽부터 경희여고 2학년 김재희, 이서영, 강민정 학생은 웅진 게임 개발 공모전에 함께 참여했다.  /사진=염지현 기자

이 밖에도 사회 문제 해결을 돕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무궁무진했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만 공개하면 ▲수화를 문자로 번역하는 시스템을 소개한 예나 학생 ▲쓰레기 배출 시스템에 라벨링을 좀 더 세밀화 하면 탄소 배출을 측정하는 프로그램을 더해 가치 소비를 할 때마다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말해준 재희 학생 ▲전세사기 문제 등으로 고통받는 시민을 위해 인공지능으로 서류 위변조 여부를 관리감독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었다는 윤하 학생의 아이디어가 빛났다. 

여러 매체에서 마치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한 부분으로 자리하며,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에도 악용되고 있는 사례를 다루면서, 언젠가부터 인공지능은 일반인에게는 물론 10대 청소년들에게도 부담스런 존재로 비춰지곤 했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인공지능을 제대로 알고 배우며 체험하는 교육을 통해, 비로소 직접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을 개선할 수 있는 도구이자 문제 해결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그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홍 교사가 만든 경희여고 AI 영재학급의 슬로건은 ‘Valuable AI with Human’이다. 인공지능이 가장 가치있게 빛나려면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는 걸 학생들도 충분히 경험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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