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과 취약성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샌프란시스코는 이상한 도시다. 걸어 다니는 몇 블록 사이에 수십 억 달러의 투자와 최첨단 알고리즘이 집약된 자율주행 무인 택시와,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은 채 만성화된 노숙 및 중독 문제가 거리 한편에서 공존한다. 혁신의 속도가 사회 문제 해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을 이 도시만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도 드물다. 혁신은 가속되었지만, 그 혁신이 만들어 낸 부(富)와 솔루션은 여전히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에 닿지 못한다.

아마 SOCAP(Social Capital Market, 이하 SOCAP)이 매년 이 도시를 무대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SOCAP은 이 거대한 격차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책임감 있는 자본이 모이는 자리, 다시 말해 돈(money)과 의미(meaning)가 만나는 공간이다. 임팩트 투자와 사회혁신 분야에서 가장 큰 글로벌 포럼으로서, 지난 17년간 투자자, 기업가, 정책가, 소셜 임팩트 리더들이 모여 “자본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왔다.

# 임팩트의 ‘주류화’는 어떤 모습일까? 

SOCAP에서 논의되는 아젠다는 한국 생태계가 몇 년 뒤에 마주하게 될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의 주제인 ‘The Future Is Collaborative: Taking Impact Mainstream’ 역시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축적돼 온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신호였다.

SOCAP Global 공식 홈페이지 메인 화면. /화면 캡쳐=SOCAP Global 공식 홈페이지 
SOCAP Global 공식 홈페이지 메인 화면. /화면 캡쳐=SOCAP Global 공식 홈페이지 

사전적 의미의 주류화(主流化, Mainstreaming)는 예외적이거나 비주류적이던 대상을 일반적이거나 주된 흐름, 즉 주류의 체계 속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이 정의를 그대로 적용하면 ‘임팩트의 주류화=임팩트가 주류 시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SOCAP에서 제시된 메시지는 훨씬 더 대담했다. 임팩트의 주류화란 기존 주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넘어 주류의 규칙·언어·평가 체계 자체가 임팩트를 향해 이동하는 과정, 다시 말해 시장의 프레임이 재배치(Repositioning) 되는 변화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SOCAP이 지난 3년 동안 일관되게 축적해온 흐름과도 정확히 이어진다.

2023년의 키워드는 ‘신뢰(Trust)’였다. 이 해는 임팩트가 작동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 즉 신뢰와 단순성이라는 토대를 다시 확인한 시기였다. 복잡한 이론보다 “왜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는가”라는 신뢰 기반의 출발점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중심에 있었다. 2024년에는 ‘시스템의 전환(Systems Change)’으로 논의가 확장됐다. 신뢰라는 기반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제 해결의 단위가 개별 솔루션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전환임을 강조했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어떤 솔루션도 충분하지 않다”는, 보다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이 중심이 됐다.

그리고 2025년의 주제는 이 흐름이 마침내 ‘시장 규칙의 이동’이라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신뢰에서 출발해 시스템 전환으로 확장된 논의가 실제로 금융·정책·자본의 기준선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주제에서 ‘협업(Collaborative)’이 강조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의 규칙을 이동시키는 힘은 어느 한 주체의 성취가 아니라, 임팩트 중심(impact-first) 관점에서 다양한 자본·행위자·국가 간의 조정과 협업이 만들어내는 재배치 과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양한 세션에서리스크의 개념, 자본 비용 구조, 시장 기회 정의, 정책 설계, 민간·공공 자본의 역할 등 기존 질서의 여러 축이 미묘하지만 분명하게 ‘문제 해결의 언어’로 이동하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 Funder Showcase: 임팩트의 주류화를 목격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로  '펀더 쇼케이스(Funder Showcase)'  세션이 있다. 한국에서는 기업이 투자자를 향해 피칭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펀드 매니저들이 무대에 올라 직접 자신들의 전략을 설명하고 LP에게 ‘왜 우리 펀드에 투자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펀드가 만들어 낸 임팩트뿐 아니라 시장 수익률을 실현하고 있음을 매출 성장, 낮은 폐업률, 팔로우온 자본, 포트폴리오 성과 등 구체적 지표로 증명했다.

이 장면은 임팩트가 더 이상 ‘자선’이 아닌, 주류 금융 시장의 언어로 번역되는 ‘투자의 한 축’이라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임팩트도 돈이 됩니다’라는 방어적 주장 대신, “이 영역이야말로 오히려 돈이 되는 곳”라는 적극적 논리가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ROI와 리스크, 시장 기회를 규정하는 주류 금융의 언어 자체가 임팩트를 기준으로 다시 쓰이고 있었다.

무대에 오른 여섯 개 펀드(Variant, JFF Ventures, ICA Fund, AMH Impact Fund, Bronze Valley, Village Capital)의 발표는 하나의 흐름으로 모였다. 전통 금융이 외면해 온 영역에야말로 시장의 알파(Alpha)—초과 수익의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Variant는 기존 금융이 다루지 않던 녹색 주택 금융과 EV 오토바이 리스에서 안정적 수익을 입증했고, ICA Fund는 무이자 대출·전환사채·M&A를 결합해 지역 기업을 매출 확대와 흑자 전환으로 이끌었다.

이들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임팩트는 수익을 희생하는 투자가 아니며, 오히려 다음 수익의 시대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보여주는 선행 신호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임팩트 주류화의 가장 선명한 모습이 아닐까?

SOCAP25 Funder Showcase 세션 현장. /사진=박윤세
SOCAP25 Funder Showcase 세션 현장. /사진=박윤세

# 이미 시작된 변화, 열려 있는 질문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임팩트 주류화는 단순히 주류가 임팩트를 ‘포용’하는 과정이 아니라, 금융·정책·시장·자본의 기준선이 임팩트를 중심축으로 재조정되는 움직임이다. 그리고 이 움직임의 실질적 동력은 신뢰와 시스템 전환을 넘어서는 새로운 협업 구조, 곧 자본의 배열을 다시 짜는 집단적 실험에서 나온다.

SOCAP25가 보여준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단일한 해답이나 모델이 아니라, 전 지구적 규모에서 이미 작동을 시작한 규칙의 이동 방향성이었다. 주류의 언어가 임팩트로 번역되고, 다시 임팩트가 주류의 규칙을 재작성하는 이 이중의 전환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패러다임 변화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주류는 언제 우리를 받아들일까?”가 아니다. 임팩트의 관점에서 시장의 규칙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이다. 한국 생태계가 이 질문에 응답한다면, 우리는 단순한 추종자가 아니라 이러한 변화의 공동 설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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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세 소임리포터

임팩트스퀘어 매니저. 대기업·공공 조직과 협력해 초기 임팩트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사업을 기획·운영한다. 임팩트 생태계 내 다양한 써밋·포럼 기획과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임팩트 비즈니스 전문 미디어 Impact Business Review(IBR)에서 필진으로 활동하며 현장의 인사이트를 전하고 있다.

임팩트스퀘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임팩트 비즈니스를 소비하도록 한다’는 미션을 기반으로 이 시대의 비즈니스가 어떻게 사회 혁신을 촉발하고, 또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비즈니스 경쟁력을 창출하는지 연구하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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