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학 모여 ‘일자리 생태계 개선 3차 공론장’ 개최
공공 의존도 낮추고 민간 중심 생태계 조성 논의
노무 지식 부족한 청년 활동가 대상 착취 구조 지적도
국제개발협력(ODA) 분야 일자리 생태계가 변곡점을 맞았다. 정부 주도의 양적 팽창에서 벗어나 민간이 주도하는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간, 관,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구조적 고용 불안 해소와 법제화 논의를 본격화했다.
사회적협동조합 공적인사적모임과 국제개발협력학회 개발협력 생태계 특별위원회(이하 생특위)는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프롬메타에서 ‘국제개발협력 일자리 생태계 개선을 위한 3차 공론장’을 개최했다. ‘말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약 230명이 참여했다.
이날 토론의 핵심은 ‘공공 의존성 탈피’였다. 발제자들은 현재 국제개발협력 시장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발주 사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로 인해 일자리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고 민간의 전문성이 축소된다는 지적이다.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곽재성 교수(국제개발협력학회 회장)는 학계의 역할을 강조하며 시장 구조 개편을 주장했다. 곽재성 교수는 “기관들이 아무리 많은 사업을 수주하더라도 일자리의 양과 질이 향상되지 않는 현재의 구조적인 문제를 증거 기반 분석으로 밝혀내는 것이 학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의 주도로 국제개발협력 업계에 ‘씨앗을 뿌려주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시장이 자생력을 갖도록 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민간 영역의 주체성 회복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사회적협동조합 공적인사적모임 이은샘 상임이사는 “지금 국제개발협력 시장은 공공의 특정 주체들에게 너무 많은 역할이 집중되어, 민간기업이 주체성을 가지고 일자리 창출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가 차원에서 개발협력이 지향하는 목적과 철학을 명확히 세우고,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일자리 모델을 재설계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공공 부문을 대표해 참석한 KOICA ODA 연구교육원 김경열 과장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김경열 과장은 “공공에서의 투입도 분명 필요하지만, 결국 생태계를 지속시키는 힘은 민간의 ‘잡크리에이션 마인드’와 다변적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KOICA에서도 재정 자원을 공급할 때 전체 산업과 각각의 생태계 구성원들에게 미칠 영향을 모두 고려하는 정책 설계를 고민한다”고 밝혔다.
현장 활동가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특히 발주 단계에서부터 현실적인 인건비가 책정되지 않아 현장의 처우 개선이 어렵다는 점이 지적됐다. 근로계약과 용역계약을 혼용하거나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관행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은샘 상임이사는 “국제개발협력 현장은 노무 지식과 기본적인 노동권 정보에 밝지 않은 젊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용역계약과 근로계약을 뒤섞고 착취하는 등 잘못된 사례들이 만연하다”며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실제로 공적인사적모임은 지난해 직장리뷰 플랫폼 ‘공사모:락모락’을 개설해 업계 내 100여 개 기관의 노동 현실을 공유하며 자정 작용을 유도하고 있다.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청중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한 참가자는 “일자리의 질과 양은 반비례하는데, 대한민국 개발협력 일자리는 지금까지 양에만 집중해왔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이전과 달리 한국의 모금 시장이 축소되면서 NGO들이 관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되었다”며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사회적협동조합 공적인사적모임 오의석 대표는 “지난 두 차례 공론장을 통해 국제개발협력 일자리 생태계 문제를 구조화하고, 해결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며 “예상보다 훨씬 폭넓은 참여가 이뤄지며, 업계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집단적 의지가 확인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주최 측은 올해 진행된 세 차례의 공론장 성과와 연구 결과를 종합해 오는 12월 11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리는 ‘2025 국제개발협력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가칭 ‘국제개발협력 진흥법’ 제정을 포함한 법·제도적 개선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