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희망 만들기 수요세미나 ⑨

모두가 ‘서울’이 되고 싶은 욕망

난데없는 김포의 서울편입론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사실상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논리적으로도 취약한 일이어서 슬슬 정리되는 분위기로 보인다. 이슈가 폭발하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서울은 여전히 서울’이라는 점이었다. 김포 이슈에 반응한 사람들은 서울에 대한 강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이 열망의 근저에는 부동산 가치의 상승이라는 경제적 이익이 깔려있지만, 서울에 대한 강력한 정서적 추앙도 있었다.

혼란스러운 것은 또 있다. 서울 메가시티론이 나오면서 이미 지나가 버린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가 슬그머니 등장하고, 남부권 공동발전론도 슬슬 시동이 걸리고 있다. 더구나 남부권 공동발전론에는 대구-경북까지 가세하면서 판을 키우고 있다. 부울경 메가시티나 남부권 공동발전론이 지향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는 무엇일까. 이같은 메가시티의 열망이 혹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서울과 같은 대도시여야 하고 그만큼의 생산력과 활력을 가져야 한다는 욕망의 발현이라면 이를 균형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포 서울편입 이슈가 터진 그날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확정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면 정말 기막힌 타이밍인 셈이다. 한편에서는 서울을 메가시티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구상을 밝히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통합한다는 종합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마침내 ‘한마음 한뜻’을 접고 각자도생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지역판 ‘양두구육’의 재판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엉뚱한 사태의 본질은 국민의힘과 윤석열정부가 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의 관점의 문제에 있다. 이들이 가진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지역을 하나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이 밀어부친 김포 서울편입과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종합계획의 어느 쪽에도 지역 혹은 국토에 대한 철학과 미래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김포는 정치이슈로 발전시켜 서울경기권의 불리한 정세를 흔들겠다는 계산이 너무 명확하고, 지방시대 종합계획은 이전 정부와 큰 차이 없는 허망한 산업전략과 이미 발표된 개별사업들의 성의없는 종합세트에 지나지 않았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이 10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석열 정부 지방시대 종합계획 발표를 하고 있다./제공=뉴스1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이 10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석열 정부 지방시대 종합계획 발표를 하고 있다./제공=뉴스1

지방소멸과 인구문제

노무현 참여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이야기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행정수도 이전,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을 말하고 실천한지 내년이면 20년이 된다. 행정수도 이전은 당연히 실패했고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참여정부 이후 정권이 다섯 번이 바뀌면서도 국가균형발전의 철학과 정책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오히려 지방은 인구감소와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과 함께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빠졌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지방소멸은 인구정책의 화두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문제에 대한 깊은 오해를 불러왔다. 지방소멸의 위기는 이론적으로 점점 뜨거워졌지만, 현실에서의 대책은 무기력했다. 지방소멸 담론이 확산되면서 지역의 인구감소는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었다. 지방소멸론의 핵심근거는 인구문제였다. 인구는 정말로 도시의 생존에 절대적인 지표인가. 이 질문은 매우 근원적이지만 사실은 한국의 지역문제에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중앙정부가 지역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일차적인 기준이 바로 인구수이기 때문이다. 지방소멸을 인구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지역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곳이 되지만, 그곳을 국토와 자원, 그리고 공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온다.

RIS이론, 새 병에 든 오래된 포도주

또 한 가지 지역에 대한 오해는 바로 ‘지역혁신체제(RIS)’다. 참여정부에서 시작한 지역혁신체제의 핵심은 지역을 미래 성장산업의 거점으로 발전시켜 이를 통해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지역을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첨단산업을 뒷받침할 R&D이며, 그것을 수행할 최적지가 바로 대학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소피아 앙띠폴리스나 스웨덴의 시스타가 바로 그런 지역혁신의 모델이었다. 노무현 정부 이래 20여년 동안 정권이 네 번 바뀌는 동안에도 이 정책의 기조는 변함이 없다. 지금껏 지방대학에 쏟아졌거나 쏟아지고 있는 LINC(산학협력중심대학), RIS(지역혁신체제),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글로컬 등의 사업은 모두 이 RIS전략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이미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2010년 이후 유럽에서도 이미 RIS론에 대한 회의론이 등장했다. RIS는 ‘새 병에 든 오래된 포도주’로 은유되었다. 즉 성공한 지역 모델을 열위지역에 복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나아가 보조금 투입으로 열위지역에 과연 성장동력은 생기는가 등의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정책은 이미 실패했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각 지역의 혁신기반 확충에 기여했으나 수도권 집중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R&D와 산학협력은 지역사회에서 일종의 도그마가 되었다. 정부와 지역사회 그리고 정치권과 한국의 엘리트 관료들 중 그 누구도 RIS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자고 나서는 이들은 없다. 본질적으로 지역문제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없고, 문제를 지적할 용기도 부족한 것이다. 중앙정부는 분권이라는 미명으로 지역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지방정부에 떠넘기고 있고, 중앙정부의 지원체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지역의 토호들은 여기에 부응하고 있다.

서울의 눈으로 지역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지역사회가 그저 중앙정부의 재정지원만 바라보며 눈감고 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지방에서 사람은 살고 있고 생태계는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지역사회는 스스로 변화 발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대기업 유치와 해외자본 투자유치는 물론이고 대규모 개발사업과 문화관광산업에 이르기까지 지역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분투해왔다. 그 과정에서 지역은 외부적 발전보다 내생적 발전의 가능성을 추구하면서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도시경쟁력과 산업전략(산업재생) 등의 발전전략과 이를 수행하기 위한 주민주체 거버넌스의 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제를 생산해왔다.

지역혁신의 핵심은 네트워크와 거버넌스에 있다.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김형기 명예교수는 일찍이 지역혁신은 지역의 혁신주체(innovator)들이 상호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지역의 대학, 테크노파크, 기업, 자치단체, 연구소 등 지역의 혁신주체들이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상호 학습하는 사회적관계가 형성될 때 지역혁신체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러한 지역혁신체계는 지역 내부에서 자생적인 발전 잠재력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지역의 내생적 발전(endogenous development)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지역이 본래 갖고 있던 잠재력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지역이 최첨단의 신산업으로 재구성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지역의 산업구조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 속에서 고용이 창출되고 지역주민들이 고용과 소비 양 측면에서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 지역의 산업전략은 이제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등의 환경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기획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산업적 중심은 과거의 지역 특화산업과 같이 지역에 밀착하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해야 한다. 즉 전통적 특화산업을 문화산업과 연계하고 이를 생산성있는 제조업적 형태로 바꿔주어야 지역의 순환경제는 비로소 작동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델이 궁극적으로 지역사회를 생태적으로 회복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지방의 위기는 매우 극적이지만 이는 또다른 기회를 잉태하고 있다. 수도권의 비정상적인 집값상승과 그로 인한 삶의 질 저하는 결과적으로 지방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제 지방은 수도권과의 끝없는 갈등과 불화를 종식하고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 수도권의 패배가 아닌 지역사회의 회복이라는 목표를 장기과제로 두고 ‘삶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사회의 구조를 재구축해야 한다.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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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제가 어렵습니다. 수십 년 동안 작동했던 성장 모델은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경제사회 구조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오는 12월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한국경제 희망 만들기 수요세미나'를 진행합니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략, 한국인의 행복이 증진되고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도록 하는 전략을 고민할 예정입니다.

소셜임팩트뉴스는 '한국경제 희망 만들기 수요세미나'의 주요 내용을 매주 월요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주시기 바랍니다.

수요세미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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