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희망 만들기 수요세미나 ⑬

1. 행복한 나라의 8대 정책

우리는 지난 몇 달간의 <한국경제 희망만들기 수요세미나>를 통해 경제, 산업, 교육, 복지, 은퇴 세대와 청년, 지방, 에너지와 환경, 시민사회, 공공봉사, 민주주의의 위기 등, 한국경제/사회의 엄중한 상황을 인식했다. 그리고 개혁의 실마리를 찾아가려 함께 노력했다. 필자는 지난 논의를 다음의 8가지 정책으로 정리한다.

1) 사상과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망국적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라! 필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생각과 표현의 자유(비판과 토론의 자유)는 절대적이다. 그것은 법률로도 다수에 의한 사회적 압력(사회적 통념)으로도 제한되어서는 곤란하다. 행동의 자유 또한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국민의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려는 관료적 관성은 개혁해야 할 대상이다. 통제가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 행동을 권유/유도하는 것. 그것이 자유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자세다. 망국적 진영논리 또한 타파해야 한다. 정치적 무능을 진영논리 속에 숨기고, 역사 전쟁의 혼란으로 돌파하려는 의도가 비일비재하다. 반대 진영의 이야기를 잘 듣고, 합의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런 정책적 조심성(prudence)은 성공하는 나라의 기본 덕성이다..

2) 첨단의 산업혁신이 촉진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 어떠한 이유에서든 혁신과정이 중지되어서는 곤란하다. 혁신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다. 의료업계는 원격의료, 택시업계는 우버형 공유 모빌리티, 숙박업은 에어비엔비 도입에 극렬히 반대한다. 이들의 반발은 적절한 정도의 보상과 설득을 통해 완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원천적으로 혁신을 금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관련해서 경제사회적 규제는 대대적으로 점검되어야 한다. 한국경영학회는 2023년 한국의 산업혁신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혁신전문회사’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서 좀 더 본격적인 전문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 농업, 어업, 사회서비스 영역 등 전통적인 산업영역에서도 새로운 혁신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거대 스마트팜에서 생산된 채소, 산속에서 키워진 참치 등 세상에는 다양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돌봄의 영역에서도 AI의 역할이 커지며, 앞으로는 로봇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3) 경제혁신은 내발적 성장과 산업조직의 민주화 속에서도 촉진된다.

4차산업혁명의 시대는 잘 나가는 20%와 뒤처지는 80%가 서로 분리되고 고착되는 사회다. 일각에서는 20%의 세금으로 80%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론자들의 주장 속에는 그런 편향성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에 대해 비판적이다. 빈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원조가 아니라 일할 기회다. 그 노동을 통해서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자부심과 사회성을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내발적 성장의 사고방식이다. 한편, 산업조직의 민주화도 필요하다. 산업조직의 민주화는 산업조직 내의 힘의 분산과 협력(독점금지 및 대/중소기업 협력), 산업조직의 다양성 유지(대기업/중소기업, 영리기업/비영리조직/사회연대경제기업, 재벌형/비재벌형 기업)를 말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경제 사회의 혁신을 가능하게 원동력이다.

4) 복지정책은 보충성의 원리와 사회적 공통자본의 사고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한국은 일관되게 복지를 확대해 왔다. 이것은 보수/진보정권 모두에게 해당된다. 앞으로 의료보험 보장성 확대, 영유아/노인 돌봄의 국가책임제 등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많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보충성의 원리’와 ‘사회적 공통자본’의 사고방식으로 복지정책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충성의 원리가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는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복지에서 행정이 주체가 되는 순간 모든 자발적 행위는 줄어들고, 형식적이고 꽉 막힌 관료적 해법만이 난무하게 된다. 사회적 공통자본의 사고방식도 유용하다. 사회적 공통자본의 사고방식에는 공공재의 공급과 관리를 단순히 시장이나 국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시민공동체(common)가 관리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인식한다. 강한 개인의 자조 능력 향상, 가족과 지역공동체의 복원, 지역 시민사회, 사회적경제 세력과의 협업 등이 강조되는 이유다.

5) 구체적으로는 기본자산, 사회보험, 생산적 복지, 지역복지, 시민복지를 결합한 방식으로 복지를 운영하자.

기본소득에 대해 너무 큰 강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소득론자들이 이상으로 삼고 있는 지표, 국민소득의 1/4 지급을 기준으로 한다면 모든 국가 예산을 다 투입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의 사회복지 전달체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본소득을 도박과 음주로 탕진했다면, 그 사람에게는 식량과 의료를 제공 안 할 것인가? 국공립어린이집은 운영 안 할 것인가? 필자는 기본소득 논의는 기본자산의 논의로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금번 세미나에서 여러 번 강조된 청년기본자산(국가사회봉사 2년+200만원 월급+5000만원 기본자산+주택청약 우선권)은 바로 이러한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사회보험(국민연금과 의료보험)과 일자리 중심의 생산적 복지로 운영하는 것은 우리 복지정책의 기본골격이다. 그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한 자활노동 시스템이었다. 자활노동이 비록 생산성이 낮을지라도, 그 노동을 통해 취약계층은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확보한다. 필자는 장기적으로 복지는 기본자산+사회보험+생산적 복지+지역복지+시민복지를 결합하고 그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역복지/시민복지는 중요하다. 복지 체감도는 사람 간의 ‘관계성’에서 나오고, 그 ‘관계성’은 지역 내에서 작동된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보충성의 원리’와 ‘사회적 공통자본’의 사고방식을 적용하는 길이다.

6) 자유와 자율의 학교, 모두가 학습하는 총체적 학습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지출하고 있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육 지출비는 세계 최상급이다. 그런데 공교육은 붕괴 직전이다. 덤으로 우리는 엄청난 사교육비용을 쓴다. 만악의 근원은 대학 서열화에 있다. 그러나 대학 서열화를 없애기 위해 평준화시켜야 한다는 것, 즉 서울대 폐지론은 마치 재벌해체론과 같은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 서울대를 없앤다고 모두가 서울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 해법은 대학 자율화에 있다. 대학의 다양성이 살아나면 서열화도 당연히 줄어들게 된다. 정부의 지원방식도 철저히 수요자중심으로 가야 한다. 대학보다는 교수에게, 교수보다는 학생에게 주는 것이 좋다. 그 학생의 등록금을 받아 대학이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국민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는 총체적 학습사회의 구축도 필요하다. 지혜란 단순히 도서관의 책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함께 고민하고 학습하고 행동하는 과정이 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모든 조직과 장소가 학교가 되게 하라! 그 학교를 통해 사회적 연대감과 지적 교양을 쌓게 하라. 대부분 지식의 스승들이 지향했던 방향이다.

7) 지방분권으로 한국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자.

매년 100만명의 은퇴자가 생겨난다. 많은 젊은이가 취업 준비로 수도권 고시원 등에서 동굴의 생활을 보내고 있다. 지방만 지친게 아니다. 수도권의 베이비부머도 청년도 지쳐있다. 이들을 어떻게 연결해서 미래의 살기 좋은 지방을 만들까? 그것이 시대적 과제이다.

지방이 서울을 따라가는 지역은 큰 의미가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지역의 자연과 전통 그리고 주민과 밀착한 산업의 구상, 혼잡한 서울을 넘어서는 새로운 생활양식,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서울보다 더 경쟁력 있고, 좀 더 여유롭고, 더 깨끗하고 안전하며, 서로 도와주고, 삶의 향기가 녹아나는 그러한 세상이다. 근본적인 해법은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과감한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균형발전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분권 확대에 따른 지방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불필요한 지방의 투자가 많아지는 것은 지역민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정부조직법의 개정, 지방으로의 예산 이양과 지역발전계획의 지역별 수립과 집행을 위한 (가칭)지방발전법 제정 등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8) 시민 덕성과 사회적 신뢰가 함양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각종 사회조사에서 북구 나라들의 행복도가 높게 나오는 이유는 그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평등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회자본이 잘 확충되어 있으며, 개개인의 사회적 규율(도덕)도 잘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한다. 도덕적이며 이타적인 행동은 무한정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전체의 신뢰도 향상과 연결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도덕적 행위 또한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필자는 시민의 사회참여를 강화하기 위한 2개의 정책을 강조한다. 첫째는 영국의 자선위원회와 같은 ‘(가칭)시민공익위원회’를 만들어, 시민사회의 투명성 감시와 시민활동 홍보 등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국민의 자원봉사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 자원봉사가 완전한 무대가성과 자발성의 범위를 벗어나, 자원봉사와 유급노동의 중간영역인 미국의 AmeriCorp와 같은 ‘국가봉사법’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다. 국가봉사법 대상이 청년이었을 때에는, 가령 복지시설 등 공동체를 위해 2년 정도 봉사했을 때, 그 대가로 청년기본자산(가령 5000만원)을 제공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봉사법제정+청년기본자산부여’로 지역개발과 복지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2. 행복증진 10법(法)

필자는 이상의 것을 잘 실현하기 위해 10개의 법을 제정 혹은 개정할 것을 요구한다. 구체적인 법률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상당한 작업이 필요하나. 여기서는 큰 방향만을 정리해 두기로 한다.

첫째는 경제민주화 추진을 위한 법이다(①경제민주화기본법 제정). 기존의 공정거래법이 주로 불공정거래에 대한 행위규제인 것에 반해 경제민주화기본법은 대/중소기업 협력, 대기업/중소기업/비영리조직/사회연대경제조직까지 포함한 산업조직의 다양성 제고, 기업의 투명성과 사회적/환경적 책임성의 강화 등을 포함한다.

둘째는 지방분권의 확대다. 지자체 스스로가 경제와 복지의 정책기획과 실행 권한을 가지며(②지방발전법 제정), 지방자치의 형태도 지방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다(③지방자치법 개정). 필요하다면 분권과 자치의 강화를 ‘헌법’에 명시해 두는 것도 좋다. 예산과 조직, 그리고 행정업무의 대폭 지방이양은 중앙정부의 조직 및 기능에 대한 대대적인 재편을 요구한다. 중앙정부 조직 관련법의 정비(④정부조직법 개정)가 필요한 이유다.

셋째는 시민참여의 강화다. 미국의 AmeriCorp 혹은 PeaceCorp와 같은 조직을 만들고(⑤국가봉사법 제정), 기부문화의 활성화(⑥세법 개정), 사회연대경제의 법적인 정비(⑦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 시민조직의 투명성 강화(⑧시민공익위원회법 제정) 등이 그 내용이다.

넷째는 기본소득/기본자산과 관련된 것이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이것을 실시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는 기존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하고, 일부 그 운영을 개선함으로써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 법의 대상은 공익을 위해 일하는 청년세대다(⑨공익근무자 기본소득보장법 제정). 예컨대 농업은 단순한 경제적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이 아니다. 문화적/역사적 실체이며, 환경보호의 저수지다. 따라서 친환경농업을 하는 청년 농민에게 주는 기본소득 혹은 기본자산은 사회의 공익적 영향력에 대한 보상이다. 돌봄 노동의 종사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본소득’ 혹은 ‘기본자산’이라는 인센티브를 사용해서라도 우리의 젊은이들이 농업이나 돌봄 같은 공익영역에 들어갈 통로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다섯째, 모든 정책의 최종목표는 국민총행복의 증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행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관련 통계를 정비하고, 각종 경제사회 정책을 조율해 갈 수 있는 법률(⑩국민총행복증진법)이 필요하다.

3. 2024년 상반기 수요세미나

향후 대안과 실천을 모색해 나가는데 필자가 견지하고자 하는 원칙은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고 과격한 개혁을 거부하라는 것이다. 모든 정책에 있어서 확실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책의 실시과정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논의과정의 ‘투명성’과 정책실시의 ‘점진성’이다. 일거에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이해관계자들의 토론과 합의를 중시하는 것, 그 느리지만 견실한 일보전진이 더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사회의 역설이다.

2024년 3월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요세미나>는 이번에 제기된 여러 과제의 구체적인 대안 마련에 더욱 힘을 쓸 것이다. 그동안 충실히 세미나의 내용을 전달해 준 소셜임팩트뉴스의 정진영 편집장에게 감사드린다. 내년부터는 웹진 라이프인도 함께 공동으로 세미나 내용을 게재하고 관련 사항도 기획 취재할 예정이다.

출처=Getty Images Bank
출처=Getty Images Bank

<편집자주> 경제가 어렵습니다. 수십 년 동안 작동했던 성장 모델은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경제사회 구조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오는 12월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한국경제 희망 만들기 수요세미나'를 진행합니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략, 한국인의 행복이 증진되고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도록 하는 전략을 고민할 예정입니다.

소셜임팩트뉴스는 '한국경제 희망 만들기 수요세미나'의 주요 내용을 매주 월요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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