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희망 만들기 수요세미나 ⑩

지난 3월 IPCC 6차 종합보고서가 드디어 발간되었다. 이 보고서에 대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인류가 얇은 얼음 위에 서 있다”고 강력한 기후행동을 촉구하였다. 전 세계 언론이 '기회의 문이 닫힌다' 식으로 6차 보고서의 의의를 대서특필했지만 기후전문가들과 세계 시민들에게 새로운 뉴스는 아니었다. 이미 2001년 3차 보고서가 발간된 때부터 세계 언론은 “지구가 보내는 마지막 경고”라는 둥 요란하게 관심과 행동을 촉구한 바 있다.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이회성 IPCC 의장은 "기후변화의 공포만 강조해선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며 6차 보고서를 기후 탄력적 개발 방향을 제시한 희망의 메시지라고 해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회성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회장이 5월 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5회 탄소중립과 에너지정책 국제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회성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회장이 5월 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5회 탄소중립과 에너지정책 국제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제공=뉴스1

인류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기후위기, 탄소중립(넷 제로), 에너지 전환 같은 용어들이 국제사회와 각국의 정책에서, 세계 언론에서 자주 등장한다. 지구온난화란 일면적인 과학적 진단은 기후변화라는 개념을 거쳐 기후위기라는 종합적이고 본질적인 표현으로 심화되었고, 온실가스 감축이란 기술적 용어는 과거 환경그룹의 급진적 구호였던, 이상적 목표라고 치부했던 탄소중립이란 종합적 청사진으로 바뀌었다. 급진적, 이상적 주장으로 여겨지던 탄소중립 개념은 2019년부터 일어난 세계적인 미래세대 시위와 예상하지 못한 일련의 정치적 사건을 거치면서 2021년 순식간에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로 정립되었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탄소중립이 환경그룹은 물론 정치지도자, 기업인, 금융인, 예술가 등 누구나 쉽게 자주 언급하는 용어가 되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의 혁명성, 무게감, 난이도를 잘 모를 수 있다.

국제사회가 2015년에 채택한 파리기후협약을 충실히 이행하더라도 지구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8℃ 내외로 상승할 전망이다. 더군다나 이 느슨한 협약조차 잘 이행되고 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의 경고와 미래세대의 호소를 반영하여 기후재앙을 비켜나가고자 국제사회는 1.5℃로 평균기온 상승을 억제한다는 목표로 '2050년 순배출 제로(Net Zero)' 또는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었다.

IPCC, 국제에너지기구(IEA),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에너지 경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단순화하면 무탄소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향상, 전기화 전환에 박차를 가해야 탈탄소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가 쓰는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 원자력, 또는 이를 변환한 수소나 청정연료로 대부분 대체하면서 산업, 수송, 건물 분야 수송 혁신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거나 줄이며 연료나 열을 쓰는 분야를 무탄소전원에서 생산된 전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한두쪽 그래프로 요약되지만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가 본 적이 없는, 화석연료 기반의 현재 경제체제를 자발적으로 폐기하는 모순, 갈등, 혁명의 길이고 더군다나 시간적 제약까지 주어져 있다. 19세기 이후 세계 GDP는 백배 이상 증가하였고 인구는 8배, 수명은 2배 가량 늘었다. 인류가 경험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와 번영은 기술과 산업의 발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확산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그 사회경제체제를 움직인 것은 화석연료였다. 같은 기간 에너지 소비는 30배 이상 증가했고 증가분은 거의 전부 석탄, 석유, 천연가스였다. 국제사회가 1992년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하고 1995년부터 28년째 매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당사국총회를 개최하고 있지만 세계 에너지 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화석연료의 비중은 여전히 줄지 않고 80%에 머물고 있다. 그런 국제사회가 2030년까지, 수 년만에 화석연료 소비량을 40% 이상 줄여야 도달할 수 있는 경로가 탄소중립 시나리오이다.

국제협약으로, 약속과 의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현실을 모르는 얘기이다. 국제협약은 리더십을 가진 그룹이 추진하는 현실적인 해결책에 대한 지체된 추인의 성격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회성 의장이 말한 ‘기후 탄력적 개발’, 매킨지 같은 컨설팅 그룹이 말하는 기후 기술과 산업의 주류화, 유럽연합의 ‘그린뉴딜’을 통해 탄소중립 추진이 가져올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과 매력의 힘으로 국제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IEA와 IRENA는 무탄소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향상, 전기화 촉진 등에 엄청난 기술, 설비, 인프라 투자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매킨지는 탄소중립 추진 시 매년 9.2조 달러씩 30년간 275조 달러 투자가 필요한데 이런 급진적 전환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세계적인 은행이나 자산운용사들도 한결같이 탄소중립 동참을 부르짖고 세계 주요 기업들은 RE100, CF100 같은 자발적인 무탄소 전환 캠페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듯 탄소중립은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체제를 녹색경제로 재구조화하는 전환이며 이는 상당한 비용과 부담을 수반하지만 동시에 투자와 기회를 창출하는 녹색성장의 길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인 한국은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약속하고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줄이는 매우 도전적인 감축목표를 추진 중이다. 한국은 GDP중 제조업 비중이 26%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철강, 정유, 석유화학, 반도체 등 에너지다소비 산업의 비중이 크다. 산업부문이 에너지 소비의 62%나 차지하는 구조라서 1차 에너지공급 세계 9위, 석유소비 세계 7위, 전력소비 세계 7위에 이르는 에너지다소비국가이다. 더군다나 재생에너지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이고 지리적, 사회적으로 보급 여건은 열악하다. 그래서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이행하는 것은 다른 OECD 회원국들보다 훨씬 더 도전적인 목표인 셈이다. 과연 우리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불안감과 의구심도 큰 상태이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다. 한국의 경제적, 외교적 위상을 유지 발전시키려면 혁신적 기후기술과 산업의 확대, 비용 효과적인 무탄소에너지 공급, 산업·수송·건물 등 에너지 부문의 효율 극대화 등을 통해 국내 산업과 경제의 기후경쟁력을 극대화하면서 녹색성장을 선도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이것은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음한 과정보다 더 힘들고 험한 여정이겠지만 여건이 매우 불리한 한국이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세계가 탄소중립에 도달하는 것도 함께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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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제가 어렵습니다. 수십 년 동안 작동했던 성장 모델은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경제사회 구조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오는 12월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한국경제 희망 만들기 수요세미나'를 진행합니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략, 한국인의 행복이 증진되고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도록 하는 전략을 고민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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