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네 개의 이름, 하나의 사명 : 사단법인 호이 박자연 대표의 18년 현장 기록

아프리카 사막 마을의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오늘날 수십 개 학교와 수만 명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와 교사를 아우르는 제도적 변화로 이어졌다. 사단법인 호이(HOIE: HOpe Is Education)의 설립자 겸 대표인 박자연의 삶은 곧 ‘교육으로 자립하는 공동체’라는 비전을 현실로 만든 살아있는 기록이다.

박자연 대표는 지난 18년간 아프리카의 가장 취약한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만들어온 인물이다. 케냐의 사막 마을에서 시작해 우간다의 공립 초등학교로 이어진 그의 여정은, 국제개발협력의 기존 관행을 넘어서는 혁신적 실천을 기록하고 있다.

“제 이름은 네 개예요. 박자연, 네이처팍(영어이름), 코레야(케냐), 라마로(우간다).”

‘양질의 교육을 통한 자립 공동체’라는 비전을 현실로 만든 박자연 대표의 모습. /사진=조태현 작가
‘양질의 교육을 통한 자립 공동체’라는 비전을 현실로 만든 박자연 대표의 모습. /사진=조태현 작가

박자연 대표는 자신을 “이름이 네 개인 세계시민”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어로 박자연, 영어로 네이처팍, 케냐 렌딜레어로 꼬레야, 우간다 아촐리어로 라마로, 세계시민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에 담긴 이야기는 삶이 곧 세계시민인 그의 사명과도 닮아있다.

세계시민으로 살아온 여정

2007년, 만 스물 여덟의 나이에 처음 케냐 북부 코어(Korr)라는 사막 마을에 파견된 NGO 해외봉사단원 박자연. 그가 그곳에서 만난 유목민 렌딜레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공동체적 삶을 이어가던 이들이었다. 긴급구호식량에 의지해 살아가던 절대빈곤의 현실은 충격적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불쌍함보다 ‘삶의 존엄’과 ‘아름다움’이 먼저 들어왔다. 무엇보다 자신을 외부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부로 받아들여 준 순간, 한국에서조차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소속감을 처음 경험했다.

케냐 코어에서 렌딜레를 만나 꼬레야가 된 당시 박자연 대표의 모습. /제공=박자연
케냐 코어에서 렌딜레를 만나 꼬레야가 된 당시 박자연 대표의 모습. /제공=박자연

그때 받은 이름이 ‘꼬레야’. ‘코어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은 이후 그가 아프리카와 평생 연결되는 출발점이 됐다. 렌딜레와 함께한 시간은 절대빈곤의 현장이자 동시에 공동체적 소속감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그 만남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었다.

해가 바뀌고 2023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새로운 이름을 다시 얻었다. 교육체육부, 굴루 지역 교육청 관계자, 교장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공식 석상에서 교육감은 그에게 아촐리어로 ‘사랑’을 뜻하는 ‘라마로’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이는 그가 우간다 교육을 향해 품은 마음이 사랑임을 인정한 증표였다.

이렇듯 이름들은 곧 그의 삶의 궤적이고, 세계시민으로 성장해온 과정을 보여주는 증표다.

호이의 탄생,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

2008년 11월 29일, 박자연 대표는 지인들과 함께 호이를 설립했다. 당시 국제개발협력의 교육 사업은 학교 건물을 짓는 인프라 위주의 ‘하드웨어’에 집중돼 있었다. 개발도상국에 교사의 성장과 변화를 지원하는 단체가 한국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이의 삶을 바꾸는 건 결국 교사’라는 신념을 믿었다. 좋은 교사가 아이의 인생을 바꾸며, 교사의 성장이야말로 공동체 자립의 핵심이라는 확신이었다. 이 확신은 곧 호이의 존재 이유이자 철학이 됐다. 그렇게 ‘왜 교육인지’ ‘왜 교사인지’ 증명하려는 호이가 첫 걸음을 뗀 것이다.

시즌 1: 케냐에서 자립 공동체를 꿈꾸다

호이의 첫 무대는 케냐 코어였다. 이곳에서 호이는 두 가지 사업을 집중적으로 전개했다. 교사들이 학사 학위를 취득하도록 지원한 ▲HEART(교사 고등교육 장학 사업), 그리고 한국 교사들이 방학마다 현지 교사들과 교직 경험을 나눈 ▲STIC(단기집중교사연수)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케냐 교사들은 상호 교류하며 서로 배우는 관계를 형성했고, 교육 내용은 점차 교과 중심에서 ‘나는 왜 교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 나아가 지속가능발전교육(ESD)으로 확장됐다.

케냐 코어 단기집중교사연수 STIC의 진행 모습. /제공=박자연
케냐 코어 단기집중교사연수 STIC의 진행 모습. /제공=박자연

결과는 뚜렷했다. 7년간의 노력 끝에 현지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TITA(Tirrim Teachers Association)라는 독립 교사 공동체를 조직해 방과 후 수업과 문해교육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했고, 교사들은 지역 리더로 자리 잡았다. 이는 외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는 커뮤니티의 실질적 모델이었다.

박 대표는 이를 두고 “렌딜레가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를 함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다”고 회상했다.

시즌 2: 우간다에서 제도를 바꾸다

2015년부터 호이의 무대는 우간다 북부 굴루와 오모로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호이는 ▲학교학습공동체(SLC, School-based Learning Community)라는 새로운 모델을 도입했다. 공개수업과 성찰회의, 공동 수업연구, 학교 문제해결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3단계 과정은 교사의 수업 역량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켰다.

2024년까지 호이는, 이 프로그램을 46개 공립 초등학교로 확산했으며, 현재 약 600명의 교사가 2만7천 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오모로 지역 지방의회가 2023년 모든 초등학교에서 학교학습공동체를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하면서, 이는 지역 차원의 교육 제도로 제도화됐다. 교사 개인의 성장이 학교 문화를 바꾸고, 나아가 제도를 혁신한 사례다. 교사 개인의 성장이 학교 문화를 바꾸고, 나아가 제도 변화를 이끌어낸 역사적 전환이었다.

SLC 2단계 공동수업연구 장면. /제공=박자연
SLC 2단계 공동수업연구 장면. /제공=박자연

아포요(APOYO) 프로젝트, 교육의 경제적 기반

그러나 교사만으로는 교육의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학부모의 경제적 기반이 없으면 교육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학부모, 특히 여성 학부모들의 자립에 주목했다.

2019년, KOICA의 사회적 연대경제 사업을 통해 여성 학부모들에게 재봉 교육을 제공했고, 사회적기업 제리백과 협업해 아포요(APOYO)라는 패브릭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아포요’는 아촐리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다. 아포요는 단순한 수익 창출을 넘어, 학부모의 경제적 역량이 강화될 때 비로소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아이들을 지탱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학생을 지탱하는 공동체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제공=박자연
아포요는 단순한 수익 창출을 넘어, 학부모의 경제적 역량이 강화될 때 비로소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아이들을 지탱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제공=박자연

학문과 실천의 접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의 힘

박자연 대표의 실천은 현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9년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교사 전문성 개발과 수업 연구를 주제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우간다에서 진행 중인 호이의 활동에 이론적 토대를 쌓기 시작했다. 이어 2023년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글로벌교육협력전공 박사과정에 진학해, 교육 실천을 학문적 성과로 남기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케냐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시대를 앞서가는 교육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남겨놓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소수로 남는다는 것이었어요. 우간다 활동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2024년 12월, 청주교육대학교 김민조 교수와 함께 ‘우간다 북부지역 공립초등학교의 교사학습공동체 운영 사례 연구’를 비교교육연구 학술지에 게재했다. NGO의 활동을 학문적으로 검증하고, 국제 교육 담론 속에 위치시킨 중요한 성과였다.

‘우간다 북부지역 공립초등학교의 교사학습공동체 운영 사례 연구’ 박자연, 김민조 (2024). 우간다 북부지역 공립초등학교의 교사학습공동체 운영 사례 연구. 비교교육연구, 34(6), 63-98. http://dx.doi.org/10.20306/kces.2024.12.31.63

“사업이 종료되기 전에 제가 직접 참여한 연구 결과물이 나왔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현장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학문적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가 되었다는 사실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실천과 연구를 병행하며 현장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 지금, 그녀는 교육 현장의 변화뿐만 아니라 국가 교육 정책까지 함께 분석할 수 있는 시야를 갖추게 되었다. NGO 활동가를 넘어 연구자로서도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학문과 실천의 접점을 만들며 18년간 활동가이자 창업가로 달려온 그는 이제 경영자의 자리에서 시즌 3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 본부가 자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외부 지원 없이도 생존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세우는 것이 당면한 과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파트너십을 확장하고, 다양한 교육 실험을 지속하려 한다.

“그동안 활동가에서 창업가가 되었다면, 이제는 경영자가 되고 싶습니다.  호이가 한국과 아프리카 양쪽에서 ‘양질의 교육을 통한 자립 공동체’라는 비전을 실현하는 단체가 되길 바랍니다.”

2025년, 호이는 또 다른 실험을 이어간다.

2022년부터 매년 12월에 진행해 온 ‘사랑은 연필을 타고’ 캠페인의 포맷이 새롭게 바꿨다. 그동안은 호이와 인연을 맺은 작가들의 그림으로 기부 리워드 달력을 제작했지만, 올해는 우간다 굴루·오모로 지역의 46개 초등학교 4·5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나의 꿈, 나의 미래’라는 주제의 그림 대회를 여는 중이다.

사단법인 호이, 2024년 연차보고서 중에서 발췌. /제공=박자연
사단법인 호이, 2024년 연차보고서 중에서 발췌. /제공=박자연

우수작으로 뽑힌 12점의 그림은 2026년도 달력 그림으로 사용된다. 한국에서 3만 원 이상 기부한 후원자들에게는 이 달력이 리워드로 전달되며, 선정된 어린이 12명은 등수에 따라 내년도 학비를 지원받는다. 1~3등은 최대 1년에서 3학기까지, 4~7등은 2학기, 8~12등은 1학기 학비를 차등 지급받는다. 아이들은 그림을 통해 학비를 마련하고, 그 그림으로 만들어진 달력은 다시 새로운 기부를 불러 모아 더 많은 저학년 친구들에게 학용품을 선물한다.

/제공=박자연
우간다 굴루·오모로 지역 어린이들이 학용품을 선물받고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제공=박자연

지난 3년간 이 캠페인을 통해 매년 약 1400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올해는 이 벽을 넘어 더 많은 아이들이 학용품을 선물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캠페인은 오는 12월 1일,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앞으로 전해질 캠페인 소식은 사단법인 호이 홈페이지(누르면 연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자연 대표는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그 믿음을 지난 18년 동안 현장에서 증명해 온 사람이다. /사진=조태현 작가
박자연 대표는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그 믿음을 지난 18년 동안 현장에서 증명해 온 사람이다. /사진=조태현 작가

박자연 대표의 여정은 봉사라는 단어로만 묶기에는 부족하다. 케냐의 사막 마을에서 교사 공동체를 세우고, 우간다에서 제도를 바꿨으며, 학부모의 자립을 통해 교육 공동체의 기반을 확장했다. 그의 활동은 수치와 지표로도 분명히 드러난다. 수백 명의 교사와 수만 명의 아동, 그리고 지역 의회 차원의 제도적 변화까지, 그 결과는 객관적 지표로 입증된다. 동시에 학문적 연구를 통해 국제 교육 협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봉사와 학문의 경계를 허물었다.

절대빈곤의 현장에서 시작된 한 젊은 봉사자의 경험은, 오늘날 국제교육개발협력의 혁신적 모델로 자리잡았다. 박자연 대표의 삶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교육으로 자립하는 공동체”의 실현 과정이었다. 그의 발자취는 지금 이 순간도 아프리카 교실 한가운데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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