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회적은행을 만나다] ⑤ 선라이즈 뱅크

전통적인 지역 은행이 전국 단위의 핀테크 기업과 손잡고, 거기서 번 수익으로 지역의 금융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모델이 가능할까? 여기, '선한 영향력(A force for good)'이라는 미션 아래,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핀테크 파트너십)과 가장 사회적인 방식(금융 포용)을 영리하게 결합한 은행이 있다. 바로 선라이즈 뱅크(Sunrise Banks)다.

1995년, 미네소타주 저소득층 밀집 지역의 도산 위기 은행을 인수하며 시작된 선라이즈 뱅크는 "은행의 성공이 곧 지역사회의 성공에 달려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들은 CDFI(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 전통적인 금융기관이 충분히 서비스하지 못하는 저소득층 및 중산층 지역사회를 위한 대출 및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별한 금융기관), B Corp(사회적 및 환경적 영향에 대해 높은 기준을 충족한 영리 기업에게 비영리 단체인 B Lab이 부여하는 인증), GABV(Global Alliance for Banking on Values, 금융을 활용하여 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달성한다는 공동의 사명을 가진 '가치 기반 은행'들의 독립적인 협회) 인증을 모두 획득하며, '가치와 돈이 만나는 곳'이라는 철학을 구현해왔다. 이들의 이야기는 "미션이냐, 수익이냐"는 이분법을 넘어, 어떻게 높은 수익성의 비즈니스 엔진을 만들어 높은 가치의 미션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경영 전략서다.

넷 제로 금융(Net Zero Financing) 프로그램의 성과를 보여준다. 2024년 12월까지 총 2180만 달러가 넷 제로 대출 프로젝트에 지원되었다. 지원된 대출금의 용도를 보면, 74%가 Firefly at Lyn-Lake와 같은 녹색 건축(green building)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나머지 25%는 상업용 부동산 청정 에너지 대출에, 1%는 청정 운송 수단(전기 및 하이브리드 차량)에 사용되어 자금 집행이 탄소 감축 활동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선라이즈 뱅크 2024 연차보고서
넷 제로 금융(Net Zero Financing) 프로그램의 성과를 보여준다. 2024년 12월까지 총 2180만 달러가 넷 제로 대출 프로젝트에 지원되었다. 지원된 대출금의 용도를 보면, 74%가 Firefly at Lyn-Lake와 같은 녹색 건축(green building)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나머지 25%는 상업용 부동산 청정 에너지 대출에, 1%는 청정 운송 수단(전기 및 하이브리드 차량)에 사용되어 자금 집행이 탄소 감축 활동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선라이즈 뱅크 2024 연차보고서

‘하이브리드 엔진’의 가동: 핀테크 B2B가 지역 B2C를 지원하다

선라이즈 뱅크의 차별점은 바로 '핀테크 스폰서십'이라는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에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스폰서 은행'으로 포지셔닝하며, TrueConnect, Self, Gusto 같은 핀테크 기업들에게 핵심적인 규제 준수 우산과 결제 처리 인프라를 제공한다.

이것은 단순한 부대사업이 아니다. 2024년 기준, 핀테크 파트너십 관련 예금이 은행 전체 예금의 62.15%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적인 자금 조달원이자 수익 기반이다. 핀테크 파트너들은 전국에서 고객을 유치하고, 선라이즈 뱅크는 이들로부터 막대한 플랫폼 수수료(비이자 수익)를 얻는다.

이 강력한 '핀테크 엔진'에서 창출된 수익과 유동성은 어디로 갈까? 바로 은행의 또 다른 심장, '커뮤니티 금융(CDFI)'으로 향한다. 선라이즈 뱅크는 대출의 63%를 저소득/중간 소득층(LMI) 커뮤니티에 집중한다. 이들의 대표 상품은 핀테크의 효율성과는 정반대의 '하이 터치(high-touch)'가 필요한 영역이다.

▶ ‘Pathway2Home’: 사회보장번호(SSN)가 없는 신규 이민자에게 개인납세자식별번호(ITIN)만으로 주택 담보대출을 제공한다.

▶ ‘신용 구축 대출(Credit Builder Loans)’: 신용 기록이 없거나 낮은 고객이 소액 대출의 성실한 상환을 통해 신용 기록을 쌓도록 돕는 재활 프로그램이다.

선라이즈 뱅크는 수익성이 높은 전국 단위 B2B(핀테크) 사업을 통해, 수익성은 낮지만 사회적 가치가 높은 지역 단위 B2C(커뮤니티) 사업을 안정적으로 교차 보조(cross-subsidize)하는 완벽한 하이브리드 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선라이즈 뱅크는 7월부터 12월 사이에 고객들이 총 550만 달러의 예금을 넷 제로 프로젝트에 지정하여 기후 금융에 공헌했다. 또한, 미네소타 외 지역에 첫 지점 1개를 개설하여 영향력을 확대하고 5000만 달러 규모의 뉴 마켓 세액 공제 프로그램 할당을 받아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러한 성과와 더불어 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팟캐스트를 출시하고 미네소타 스타 트리뷴의 일하기 좋은 직장 200곳에 선정되는 등 사회적 영향력과 기업 문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한 해를 보냈다. /출처=선라이즈 뱅크 2024 연차보고서
선라이즈 뱅크는 7월부터 12월 사이에 고객들이 총 550만 달러의 예금을 넷 제로 프로젝트에 지정하여 기후 금융에 공헌했다. 또한, 미네소타 외 지역에 첫 지점 1개를 개설하여 영향력을 확대하고 5000만 달러 규모의 뉴 마켓 세액 공제 프로그램 할당을 받아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러한 성과와 더불어 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팟캐스트를 출시하고 미네소타 스타 트리뷴의 일하기 좋은 직장 200곳에 선정되는 등 사회적 영향력과 기업 문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한 해를 보냈다. /출처=선라이즈 뱅크 2024 연차보고서

미션과 성장의 ‘디커플링(decoupling)’, 전문성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다

'가치'와 '성장'은 종종 충돌한다. 하지만 선라이즈 뱅크는 이 둘을 분리(decoupling)하는 데 성공했다. 2020년에서 2024년 사이, 총 대출 규모는 52.5% 성장하는 동안, 은행의 총 금융 배출량(탄소 발자국)은 오히려 31.2% 감소했다. 특히 핵심 자산인 상업용 부동산(CRE) 대출의 탄소 배출 집약도는 60% 이상 급감했다. 이는 성장이 반드시 환경 파괴를 동반하지 않음을 데이터로 증명한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단순히 선한 의지가 아닌, 철저한 전문성과 리스크 관리에서 비롯된다.

1. 핀테크 집중 리스크 관리: 전체 유동성의 62%를 소수의 핀테크 파트너에게 의존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선라이즈 뱅크는 2024년 핵심 파트너인 TrueConnect를 직접 인수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이는 리스크를 내부화하는 동시에 핵심 수익원을 영구적으로 확보하는 고도의 전략이다.

2.기후 리스크 관리: PCAF(탄소회계금융협회) 방법론을 도입해 배출량을 측정하는 것을 넘어, 직원들이 GARP의 SCR(지속가능성 및 기후 리스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지원한다. 기후 리스크를 재무 리스크로 인식하고 정량화할 전문 인력을 내부에서 양성하는 것이다.

3. 운용 리스크 관리: 100% 생활 임금 지급, JEDI(정의, 형평, 다양성, 포용) 위원회 운영 등 포용적 기업 문화를 구축했다. 그 결과 87%라는 높은 직원 유지율을 달성했는데, 이는 높은 이직률로 인한 운용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가장 비용 효율적인 리스크 관리 전략이다.

선라이즈 뱅크 금융 배출량 추이(왼쪽)와 운영 배출량 추이(오른쪽).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총 금융 배출량은 2020년 136,298(tCO2e)에서 2024년 93,894(tCO2e)로 감소하는 추세를 나타냈으며, 특히 사업 대출(Business Loans) 부문이 다른 자산군에 비해 높은 배출량 집중도를 보였다. 2024년 운영 탄소 배출량의 구성은 구매한 에너지(전기)가 319.61(tCO2e)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고정 연소(천연가스) $121.52(tCO2e), 출장(항공 여행) 30.12(tCO2e)가 그 뒤를 따른다. 총 운영 배출량은 2020년 988(tCO2e)에서 2024년 441(tCO2e)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어, 은행이 운영 효율화를 통해 직접적인 탄소 발자국을 성공적으로 줄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선라이즈 뱅크 2024 연차보고서
선라이즈 뱅크 금융 배출량 추이(왼쪽)와 운영 배출량 추이(오른쪽).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총 금융 배출량은 2020년 136,298(tCO2e)에서 2024년 93,894(tCO2e)로 감소하는 추세를 나타냈으며, 특히 사업 대출(Business Loans) 부문이 다른 자산군에 비해 높은 배출량 집중도를 보였다. 2024년 운영 탄소 배출량의 구성은 구매한 에너지(전기)가 319.61(tCO2e)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고정 연소(천연가스) $121.52(tCO2e), 출장(항공 여행) 30.12(tCO2e)가 그 뒤를 따른다. 총 운영 배출량은 2020년 988(tCO2e)에서 2024년 441(tCO2e)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어, 은행이 운영 효율화를 통해 직접적인 탄소 발자국을 성공적으로 줄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선라이즈 뱅크 2024 연차보고서

한국 신협에 던지는 질문 : ‘수익 엔진’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가?

선라이즈 뱅크의 하이브리드 모델은, 낮은 예대마진(NIM)과 성장 정체로 고민하는 한국신협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1. 제2의 수익 엔진을 장착하라: 한국 신협은 전통적인 예대마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선라이즈 뱅크처럼, 신협 중앙회 차원에서 핀테크 스폰서십이나 B2B 결제 플랫폼 등 전국 단위의 강력한 ‘비이자 수익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여기서 창출된 수익을 '공동 기금'으로 조성하여, 지역 조합들이 수행하는 금융 포용 사업(소액 서민 대출 등)의 리스크를 보전해 줄 수 있다.

2.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전문가’에게 투자하라: 선라이즈 뱅크는 최고 핀테크 책임자(CFO), 최고 리스크 책임자(CRO) 등 전문 경영진이 혁신과 안정을 주도한다. 한국 신협의 무보수 명예직 중심 거버넌스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현대 금융 환경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조합원 민주주의를 지키되, 리스크 관리, 디지털, ESG 등 핵심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의무화할 수 있다.

3.‘착한 은행’을 넘어 ‘유능한 은행’으로: 선라이즈 뱅크는 '신용 구축 대출'처럼 사회적 가치가 높은 상품을 제공하는 동시에, 'PCAF(금융기관이 대출 및 투자 활동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고 공개하는 글로벌 표준을 제공하는 금융기관 주도의 협의체)'처럼 고도의 전문성으로 기후 리스크를 관리한다. (가칭)가치금융신협도 대출 포트폴리오의 탄소 발자국을 측정해 공시하는 등, 선한 의지를 넘어선 '전문성'과 '투명성'을 입증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

미래를 향한 제언: 금융 포용, 디지털, 기후 변화라는 21세기 표준

선라이즈뱅크는 지역에 뿌리를 둔 커뮤니티 은행이 전국 단위 핀테크와 결합하고, 전문경영의 역량을 더하면 ‘사회적 가치’라는 목적지로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금융포용, 디지털 전환, 기후 대응이라는 21세기의 핵심 과제를 동시에 풀어낸, 가치 기반 금융의 하나의 새로운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해외 사회적은행은 서로 다른 전략(연대, 규모, 정책, 기술)을 사용했지만, 결국 ‘명확한 미션’과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가칭)가치금융신협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이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금융의 모습을 그려나갈 다음 단계를 기대한다.

다음 편에서는 '내부 혁신'를 통해 거대한 레거시 시스템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신협을 만난다. 40만 조합원을 둔 거대 신협이 어떻게 '디지털 샌드박스'라는 혁신적인 조직 설계를 통해 40년 의존의 고리를 끊고 자유와 미래를 확보했는지, 시빅 페더럴 신협(Civic Federal Credit Union)의 파격적인 디지털 독립 선언 스토리를 통해 한국 신협의 혁신 모델을 모색해본다.

We Fund Value – 세계의 사회적은행을 만나다.

우리는 지금, 가치로 금융을 다시 쓰는 여정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가칭)가치금융신협은 시민이 예금하고 시민이 투자하는 새로운 금융의 형태를 모색하며, 사회혁신과 금융이 만나는 지점을 다시 설계하려 합니다. 그 첫 걸음으로,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이미 ‘가치에 투자하는 은행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번에 발간하는 ‘We Fund Value’ 시리즈는 세계 가치기반은행 네트워크인 GABV(Global Alliance for Banking on Values) 회원사 30곳의 철학과 실천을 다룬 기록입니다. 독일의 GLS은행, 캐나다의 데자르뎅, 스페인의 라보랄쿠차 등 각기 다른 문화와 제도 속에서 꽃피운 사회적은행들의 이야기입니다.

“돈은 어디로 흘러가야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질까?”

이 질문은 단지 금융의 기술이 아니라, 금융의 윤리와 존재 이유를 되묻는 물음입니다.

‘We Fund Value’는 이 질문에 대한 30개의 답이자, 우리가 만들어갈 (가칭)가치금융신협의 밑그림입니다.

본 시리즈는 2025년 11월부터 2026년 2월까지 매주 두 차례 총 15주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며, (가칭)가치금융신협 홈페이지(누르면 연결)에 상세한 분석리포트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이 연재를 통해 우리는 배우고, 또 묻습니다.

사회적은행은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가?

금융이 지역공동체의 신뢰를 다시 세울 수 있는가?

그리고 한국의 (가칭)가치금융신협은 어떤 모델로 성장해야 하는가?

금융의 언어로 사회를 다시 상상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진 소임리포터

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이자 사단법인 사회혁신기업가네트워크 상임이사.금융과 사회혁신 분야의 전문가로, 10년 넘게 사회적금융의 제도적 토대와 생태계를 구축해왔다.사회적경제 기업과 창업가들에게 실질적인 자금 지원과 맞춤형 금융 컨설팅을 제공하며, 자조기금, 사회투자기금, 신협 설립 등 다양한 금융 모델을 실험해왔다.우리금융지주, AT Kearney, Accenture, 삼정KPMG등에서 금융기관의 전략적 혁신을 이끌어낸 바 있으며, 이는 그가 새로운 금융 모델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현재는 (가칭) 가치금융신협출범을 주도하며, 글로벌 가치기반은행의 네트워크(GABV)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형 사회적은행 모델을 설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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