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책과 행동 수요세미나 ③

이동권, 국가 예산을 통해 ‘보편적 권리’로 보장해야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장애인의 절반 수준인 49%가 집밖 활동 시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으며, 그처럼 집밖 활동이 불편한 이유로 40.8%가 장애인 관련 편의시설의 부족을 꼽고 있다. 또한 교통수단 이용 시 어려운 정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39.8%가 어렵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러한 편의시설의 부족과 교통수단 이용의 어려움은 장애인의 외출을 제약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어, 전체 장애인의 21.7%는 한 달에 3회 이하의 외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 우리나라 등록장애인 중 1~2급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0% 정도였음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중증장애인 대부분이 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집안에, 혹은 창살 없는 사회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법이 이듬해 시행되면서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전에 없던 것이 새롭게 생겨나니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 과연 그런가?

애초 법 제정 이후 처음 수립된 「제1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07~2011)」상으로는 2011년까지 전체 시내버스의 31.5%를 저상버스로 교체해야 했지만, 저상버스 보급률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2%에 불과했다. 또한 「제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2~2016)」상으로는 2016년 말까지 41.5%를 저상버스로 교체해야 했으나 실제 보급률은 19%에 불과했고,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7~2021)」이 완료된 2021년 12월 기준으로 30.6%에 머물렀다. 즉 제3차 국가 계획이 마무리되도록 제1차 계획의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행 중인 전체 고속·시외버스 1만 여대 중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건 서울과 당진 간을 운행하는 단 2대에 불과하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은, 지하철이 존재하지 않고 버스의 운행 간격도 긴 시·군 지역의 경우 장애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상적 대중교통 수단이다. 그러나 대중교통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 예측성과 연결성이 전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특별교통수단의 법정 기준 대수는 2019년에 중증장애인 200명 당 1대에서 150명당 1대로 재조정되었다(인구 10만 명 이하인 시·군은 2024년부터 100명당 1대).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매우 임의적이어서 광역시와 같은 대도시에서도 대기 시간이 매우 길고, 농어촌 지역의 경우 며칠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용이 불가능한 지역도 많다. 또한 특별교통수단의 도입 책임이 시·군에 맡겨져 있다 보니 지역별 편차가 매우 큰 상황이다. 전체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법정 기준을 충족한 곳은 서울, 경기, 강원, 경남, 세종, 제주 등 6곳에 불과하다.

장애인운동의 오랜 투쟁의 결과 2022년 1월 18일 교통약자법이 개정되어 ▲노선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 ▲특별교통수단의 원활한 환승·연계 등을 지원하기 위해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항 ▲국가 또는 도(道)가 특별교통수단 이동지원센터 및 광역이동지원센터의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이동지원센터에 대한 국비 지원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원안의 강제 조항이 아닌 임의 조항으로 수정되고 말았으며, 기재부는 특별교통수단에 대해 터무니없는 예산만을 배정하고 있다. 특별교통수단이 원활히 운행되기 위해 필요한 2024년 중앙정부 예산이 3,350억 수준임에도, 실제 책정된 예산은 이의 7분의 1인 480억에 불과하다.

교통약자법 제3조는 “교통약자는 […]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이동권 조항은 국가 차원의 구체적인 예산을 통해 뒷받침될 때에만 공허한 선언이 아닌 하나의 실질적인 권리로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다. 23년을 외쳐왔지만 장애인들의 이동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기에, 그들의 투쟁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 버스 정류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관련 시위를 위해 대학로 방면으로 가는 741번 저상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 제공=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 버스 정류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관련 시위를 위해 대학로 방면으로 가는 741번 저상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 제공=뉴스1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장애인 노동 현실은 기본적으로 ‘3분의 2’이라는 수치를 통해 정리될 수 있다. 즉 만 15세 노동 가능 연령 장애인 중 3분의 2가 비경제활동인구로 내몰려 있고, 장애인 취업자 중 3분의 2는 비정규직이며, 장애인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하여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을 통해 1991년부터 시행된 것이 바로 장애인의무고용제도이다. 이 제도에 따라 상시 고용인원 50인 이상의 사업장에 대해 민간 부문 3.1%, 공공 부문 3.8%의 장애인 고용 의무를 부과하고, 미 준수시 고용부담금 부과하며, 의무고용률 이상 고용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고용장려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 34년을 맞은 현재까지도, 의무고용률을 달성한 기관의 비율(이행비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상시 고용인원 100~299인 기업 집단의 이행비율은 50%를 다소 상회하지만, 300~499인 기업 집단은 30%대로 떨어지며, 1,000인 이상 기업 집단은 20% 중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의무고용제도가 장애인 고용을 촉진할 수 있는 실질적 장치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최소한 현행의 장애인 출현율 5.39%에 맞추어 재조정 되어야 하며, 장애인고용부담금 또한 실질적인 제재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현재의 최저임금 60% 수준에서 최저임금 이상의 수준으로 상향 조정되어야만 한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미고용 인원 1인에 대해 최저임금의 2~3배(소기업은 약 2배, 중기업은 약 2.5배, 대기업은 약 3배)에 해당하는 고용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무고용제도는 기본적으로 노동시장 내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노동시장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온 대다수 장애인의 노동권 확보를 위해서는 현재 장애인운동이 ‘공공시민노동’ 개념에 근거하여 제도화하고 있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정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공시민노동이란 하나의 ‘개념’이기도 하고 ‘시스템’이기도 하다. 우선 공공시민노동 개념은 ‘노동’은 ‘시민’의 권리이므로 ‘공공’ 영역에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위험사회에 대한 논의로 잘 알려져 있는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Schöne neue Arbeitswelt, 1999)에서 제시한 ‘시민노동’(Bürgerarbeit)개념에서 일차적인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다. 벡은 ‘제2차 현대’(second modernity)에서 완전 고용이란 시장에 대한 종교적 믿음하에서만 가능한 헛된 구호가 되었다고 진단하지만, 탈노동 사회가 대안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조직될 수 있는 정치적이고 문화적이며 공익적인 여러 활동(시민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해 대가를 지급함으로써, 취업자/실업자의 경계를 해체하고 자원 분배에 대한 새로운 규범을 확립하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공공시민노동’ 개념에 근거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 개’를 요구로 내걸고 2017년 11월 21일부터 2018년 2월 13일까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점거 농성을 진행한 바 있다. 그리고 2019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성과로 서울시에서 2020년 하반기에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시스템이 처음 도입되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사람이 일자리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사람에게’ 맞춘다는 원리를 견지한다. 최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되 탈시설 장애인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며 최저시급을 지급한다. 기본 직무는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 문화예술 활동의 세 가지로, 즉 정치 활동과 문화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3년의 경우 서울(400개), 경기(500개), 인천(50개), 강원(37개), 춘천(40개), 경남(100개), 전남(93개), 전북(76개), 제천(10개) 등의 지자체에서 총 1,300여개의 일자리가 운영되었다. 그리고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화하기 위해 2023년 5월 1일 노동절에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지원 특별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러한 공공시민노동이 확장되고 보편화될 때 노동은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만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놀이’가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시민권으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Getty Images Bank
출처=Getty Images Bank

탈시설, 능력이 아닌 제도의 문제

“수십 년 세월을 골방에 갇혀 시설에 처박혀, 차별과 억압 피눈물 속에 살아온 동지여…”. 장애인권운동의 현장에서 많이 불리는 「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의 첫 소절이다. 한국 사회에는 장애인들을 지역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시설이 전국 곳곳에 존재하고, 그곳에서 여전히 수만 명의 장애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 관련 ‘시설’에는 장애인복지관 같은 다양한 지역사회 이용 시설도 있지만, 시설이라고 하면 통상 ‘거주시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장애인권 활동가들은 보통 거주시설이라는 법적 용어보다 ‘수용시설’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쓴다. 그 말이 시설의 성격을 좀 더 잘 드러내준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수용시설로는 감옥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감옥의 사례에서 확인되듯, 시설로의 수용은 사회가 일탈자(deviator)라고 판정한 사람들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 중 하나다. 역사적으로 일탈자에 대해 인간 사회가 대처해 왔던 방식은 일탈자들의 ‘예방’, ‘제거’, ‘격리’, ‘되돌리기’가 존재했다(예컨대 범죄 예방, 범죄자의 처형, 감옥으로의 격리, 선량한 시민으로의 교화). 장애인 또한 사회정책적 개입과 불임수술(예방), 선별적 낙태와 안락사(제거), 시설수용(격리), 의료적 재활(되돌리기)의 대상이 되어왔다. 결국 장애인이 시설수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장애인을 일탈자 혹은 비정상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정부는 자발적 동의에 의한 입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시설 역시 장애인 주거권 보장의 한 형태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 그러한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은 “뿌리 깊은 억압들은 모두 강제와 동의라는 두 가지 방법을 동원하는데, 억압에 동의하게 만드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데 있다”고 말한다(『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휴머니스트, 2019, 168쪽). 자신의 동의하에 시설에 입소한 장애인들이 물론 존재하지만,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봉쇄당한 이들이다. 일종의 ‘강제된 동의’(forced consent)이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인 셈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2006년 제정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제19조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통합’에서 탈시설의 권리를 명문화하고 있다. 또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7년 발표한 ‘일반논평 제5호’(General comment No. 5)를 통해 탈시설에 대한 상세한 해설과 규정을 마련했으며, 이에 더해 다시 2022년 9월 9일에는 총 143개 항에 이르는 ‘탈시설 가이드라인’(Guidelines on deinstitutionalization, including in emergencies)을 공표했다. 대한민국 역시 2009년 1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중앙 정부 차원의 탈시설 정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누군가는 중증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 장애인시설 자체를 없앤 나라들도 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장애인시설 거주인의 대부분은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이 차지하고 있는데, 1985년 발간된 노르웨이 정부 보고서 『발달장애인의 생활 여건』은 “시설에서 발달장애인이 처해 있는 생활 여건은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며, “그러한 상황은 활동의 재조직화나 자원 공급의 증가에 의해 실질적으로 변화될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이 보고서의 내용과 입장에 따라 노르웨이에서는 1988년 6월 시설 체제의 전면적 개혁을 위한 입법 조치, 즉 일명 ‘시설해체법’이 시행되었다.

그 법은 장애인의 신규 시설 입소는 1991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종료되고, 기존의 시설 생활인들도 1995년 12월 31일까지 모두 지역사회에 있는 자신의 주거 공간에서 거주해야 하며, 이에 따른 비용은 모두 중앙 정부가 각 자치구에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스웨덴에서도 1990년부터 본격적인 탈시설 작업이 시작되었고, 1997년 10월 제정된 「특수병원 및 거주시설 폐쇄법」에 따라 1999년 12월 31일까지 모든 장애인시설이 폐쇄되었다.

이 같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한 사회가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시스템을 갖춘다면 시설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에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도 2019년 9월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마련을 정부에 권고했고, 한계적이나마 2021년 8월 정부 차원의 탈시설 로드맵이 발표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아무런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지 않을 뿐. 시설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institution’은 또한 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요컨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제도의 문제이지 그들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와 소셜임팩트뉴스, 라이프인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책과 행동'을 주제로 2024년 상반기 수요세미나를 진행합니다. 2023년 하반기 '한국경제 희망 만들기 수요세미나'와 2024년 1,2월 '희망한국 만들기 수요세미나'에 이어 세 번째로 준비한 세미나 시리즈 입니다.

이번 상반기 세미나에서는 ▲지속가능한 사회 ▲지속가능한 환경과 생명 ▲지속가능한 세계 등 3가지 큰 주제를 중심으로 각계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을 발제하고 참석자들과 토론합니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강의실과 줌(Zoom) 온라인 연결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매회 세미나 발제문 요약은 소셜임팩트뉴스와 라이프인 지면을 통해 공유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2024 상반기 수요세미나 포스터 / 제공=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2024 상반기 수요세미나 포스터 / 제공=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저작권자 © 소셜임팩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